영국·미국서 17만부 이상 팔려…정치적 성향따라 호불호 엇갈려

유럽의 죽음 표지.
서유럽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개적으로 이민이나 다문화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인종주의자’나 ‘시대에 뒤떨어진 극우 꼴통’이라는 비난이 빗발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인 더글러스 머리가 ‘유럽의 죽음’(원제 The Strange Death Of Europe·열린책들)에서 한 문제 제기는 도발적이다.

그는 “우리가 유럽이라고 알고 있는 문명은 자살을 감행 중”이라고 선언하면서 그 주된 원인이 이민자의 대규모 유입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몇 년에 걸쳐 그리스 동남쪽 끝에 있는 섬들과 이탈리아 최남단의 외딴곳에서부터 스웨덴 북부의 심장부와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교외까지 무수히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급증하는 이민과 난민 유입이 초래한 여러 갈래의 실상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다양한 정치인과 정책 입안자, 국경 경비대원, 정보기관, 비정부기구 활동가, 일반 대중,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에 새로 도착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저자는 이 오랜 여정 끝에 유럽은 이민에 ‘중독’됐고 그에 따라 유럽은 정체성을 상실해간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에 따르면 이 중독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을 장려하면서부터다. 제국시대 식민지였던 곳의 주민들은 정당성을 갖고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유럽에 들어올 수 있었다. 노동력도 부족한 터였다.

그렇게 시작된 이민의 물결은 먼저 정착한 사람들이 뒤이어 가족들을 끌어들이면서 점차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돼 갔다. 유럽의 정치인들은 제국주의의 잔인한 역사를 뛰어넘어 인도주의 강대국으로, 그리고 더 젊고 평등하고 다양한 문화의 대륙으로 거듭나는 데 이민의 물결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 유럽의 이민자 인구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급증했고 중동, 북아프리카, 동아시아로부터 유입된 사람은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그때부터는 이민자 수를 예측하지 못했고 ‘무제한’의 이민 정책은 사회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민 중독을 초래한 또 다른 원인은 유럽 스스로 믿음을 상실한 데에 있다. 유럽의 종교, 역사, 정통성에 관한 믿음이다. 물론 과거에도 지역 간 교류는 있었고 이로 인해 획기적 변화가 초래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유럽을 유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체성의 핵심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민과 다문화에 관해 어떤 관점을 갖든 무슬림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이민으로 유럽 인구 변동과 범죄 증가, 사회 전체의 이슬람화가 초래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팩트’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1989년 소설가 살만 루슈디 살해 위협,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2001년 샤를리에브도 테러, 2015년 파리 동시다발 테러, 2017년 웨스트민스터 테러,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등 무슬림들이 연관된 테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저자는 이를 ‘무슬림 테러’라고 정확히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출간된 이 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17만 부 이상이 팔렸다. 또 일부 유력 언론으로부터 “지난 30여 년간 서유럽 각지의 엘리트들이 사회 통합의 실패와 이슬람주의의 부상에 대해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책으로 누구나 설득당한다”(더 타임스)라는 식의 긍정적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진보적인’ 언론 매체로부터는 “고상하게 꾸민 외국인 혐오를 기술하고 있을 뿐이며 저자가 위협받고 있다고 한 유럽 문화의 정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기술하지 못하고 있다”(가디언)고 혹평을 받았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책이다.

유강은 옮김. 512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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