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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사정변경의 원칙과 착한 임대인
[아침광장] 사정변경의 원칙과 착한 임대인
  • 금태환 변호사
  • 승인 2020년 03월 22일 16시 1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23일 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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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환 변호사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이것은 법률에 있어서 기본 원칙이고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계약은 약속이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가 어떠할 것인지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다. 10여 년 전 키코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기업들이 환율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은행과 외환변동 보장 계약을 하였는데 외환위기로 달러가 급등하여 738개 기업이 3조2247억원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2009년 한국의 총예산이 200조 가량되는 점을 고려하면 그 손해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환율 급등을 예상할 수 없었기때문에 계약이 무효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대법원은 이를 배척하고 소위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손해가 막대하다고 하여 그것만으로는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요즈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임대료 인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임차인의 영업저조를 이유로 착한 임대인들이 그 사정을 참작하여 주는 것이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함께 살기, 연대의식의 좋은 본보기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법률적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정도가 되어 임대차 계약이 무효로 될 수 있는 것일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국적으로 철시할 정도가 되고 피해가 장기화되지 않는 한 계약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계약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는 것은 맞지만 아직은 단기간이고 지역에 따라 사정이 많이 다르며 계약의 구속력을 인정한다 해도 현저히 신의칙에 반하는 결과가 생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면 법률은 매우 보수적이다. 법률은 함부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하였을 때 생기는 혼란을 먼저 생각한다. 임대차 계약을 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데 모두가 계약의 무효를 들고 나오면 사회 전체의 계약이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으로나 각각 개개의 사정으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법률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판단하고 중간이 없다. 이점이 법률의 한계이고, 이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조정 중재 등의 대체적 방법이 나오긴 하였지만 아직 미미하다. 그리하여 법률을 오래 다루는 법률가들은 양보를 모른다. 그저 자기 주장만 관철하려 하는 것은 이기느냐 지느냐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규범으로 도덕, 종교 등이 있고 이들이 법률보다 더 고차원인 것은 양보, 연대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인은 법률은 사랑이 없어 종교보다 하위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법률에도 사정변경의 원칙이나 작량감경 같은 것은 있지만 이것들은 예외적이다. 작량감경은 판사가 형량을 정할 때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법률에 정해진 형량보다 감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법률은 삭막하고 빡빡하다. 법률가는 제대로 못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임차인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일시적으로 임차료를 줄여주는 임대인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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