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봄이었으니 꽃차례조차 무한총상이다

너는 그렇게 봄의 시간을 묶고 삶을 묶는다
잎이 피기 전의 시간을 담아낸
너는 백의의 정령이거나 성녀겠다
너는 개화의 아픔을 기억해서는 안된다
만개 아니었다면 너를 부르지 않았을,
매혹은 쉬이 무너지는 육체여서 슬펐던 봄날이다
이제는 개화의 통증을 피워내
햇빛 머물게 하는 너를 몰랐다 말하고 싶다
너를 몰랐으므로 봄날을 몰랐을
봄꽃, 그 난망의 생을 지켜볼 뿐

미선이어서 더 아릿하고 희디 흰


<감상> 척박한 봄이기 때문에 미선나무는 밖에서 안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곳으로 피는 ‘무한화서’이다. 개화의 아픔마저 기억하지 못한 채, 이 꽃은 잎 피기 전의 시간과 봄 전체의 시간을 아우르는 구심성(求心性)을 갖고 있다. 이런 고통 속에서 핀 만발(滿發)에 화자가 매혹되지 않을 리가 있겠나. 꽃 이름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정령이 내 마음에다 불을 지폈기에 낙화를 지켜보는 건 더 견디기 힘들다. 너(봄날)를 몰랐다고 부정하고 싶으나, 바라보기도 잊기도 어려운 난망(難望, 難忘)의 세월을 굳건히 견딜 뿐이다. 봄날의 개화와 낙화, 사랑과 이별은 그대뿐이므로 더 아리고 한 빛깔로 마음속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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