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가톨릭 교회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유럽 중세 시대에 지어졌던 성당을 보고 그 웅장함과 장엄함에 압도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높게 솟은 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 도입된 뾰족한 첨형 아치(pointed arch)와 늑골 궁륭(rib vault), 그리고 외벽을 안정적으로 지지하기 위해서 설치된 공중 부벽(flying buttress) 덕택으로 가톨릭 교회는 당시 성당들을 거대한 규모로 지을 수 있었다.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 엄청난 공간에 압도된 교인들로 하여금 신(神)과 교회의 위대함과 절대성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미개하고 의미 없는 존재인가를 느끼게 함으로써, 가톨릭 성직자들은 자신들이 중세 사회에 떨치고 있던 권위와 세도를 유지하고 강화하고자 하였다. 사람들이 대거 모이는 건축물을 통하여 교회가 추구하고자 한 모레스(mores), 즉 사회 규범을 민중에게 주입했던 유럽 중세 시대의 성직자들은 인간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분위기’에 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중에 간신히 개강한 대학들이 온라인 수업, 즉 비대면(非對面)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자 많은 언론 기관들이 이를 두고 대학 교육에서의 ‘획기적이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연신 대서특필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이라는 컨셉은 대학 입장에서 크게 생소한 포맷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에서 방송통신대 및 여러 사이버대학들이 운영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대학 또한 무크(MOOC)와 이를 이용한 플립드러닝(flipped learning) 등의 온라인 강좌 시스템을 오랫동안 제공해왔다. 이렇듯 온라인 수업 노하우가 있었음에도 여태껏 전면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아직 강의실 교육이 주를 이루는 이유가 시스템 이용에 대한 미숙함 또는 인프라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사람들의 ‘군집 활동’이 잦은 대표적 기관들로 떠오른 학교와 교회의 공통점은 둘 다 ‘교육 기관’이라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이 사회인으로서 살아 나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판단 능력을 배양해주기 위하여 존재하고, 교회는 교인을 영적(靈的)으로 성장시켜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학교와 교회가 제공하는 교육을 통해 그 수혜자가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만큼 교수나 성직자에게 더 큰 보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나 교회가 학생 또는 교인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목표를 두고 교육 과정을 수립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유흥을 즐기면서 자신의 탐욕과 야망이 이끄는 대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을 제어하고 사람이 원하던 원치 않든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알아야 한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배우게 하는 것이 학교와 교회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목적인 만큼, 이러한 교육의 모든 과정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받기 싫지만 받아야 하는’ 교육을 이수하기 위한 자기 절제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감 형성을 위한 일정 부분의 물리적 통제가 필요하고, 같은 교육을 동시에 받는 옆 사람들을 바라보며 얻는 모티베이션 또한 중요하다. 잠옷을 입은 채로 아무도 없는 집 한가운데에 있는 편안한 소파에 앉아서 듣는 설교나 강의의 효과가 예배당에서 교인들과, 강의실에서 학우들과 다 같이 모여서 듣는 효과와 같을 수는 없다. 중세 유럽에서나 현대 한국에서나 사람은 ‘분위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독실한 신자나 전교 1등 모범생 등은 장소와 방식을 막론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이런 일부만이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비상사태에서 온라인 강좌, 온라인 예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러한 ‘만나지 않는 교육’이 교수와 학생들, 성직자와 교인들이 직접 ‘만나는 교육’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