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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오디세이] 1. 서출지와 사금갑 설화
[삼국유사 오디세이] 1. 서출지와 사금갑 설화
  • 김동완 역사기행 작가
  • 승인 2020년 03월 25일 21시 31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26일 목요일
  • 15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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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는 왕비와 승려의 스캔들 고발 투서 나온 못…왕은 왜 왕비를 죽였는가
서출지.
서출지.

서출지에 봄이 왔다. 봄은 못 주변에 시립한 목련 개나리 벚나무 앞에 섰다가 때맞춰 불어오는 화신풍(花信風)을 타고 꽃의 문을 열었다. 목련이 가장 먼저 얼굴을 내밀었고 개나리와 벚꽃이 뒤이어 문을 열었다. 

못 안의 봄 풍경은 더디게 온다. 못을 둘러싼 백일홍은 앙상한 나목 상태로 서 있고 못 속의 연꽃은 죽은 줄기를 드러낸 채 화려했던 지난여름을 반추하고 있다. 못에 다리를 내리고 서 있는 ‘이요당(二樂堂)’ 정자에서도 봄기운을 느끼기는 어렵다. 음산한 기운마저 돈다. 이게 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돌림병, 코로나19 때문이다. 사람이 드문한 못에 꽃만 핀다.

서출지 여름풍경
서출지 여름풍경

서출지는 왕비와 승려의 스캔들을 고발한 투서가 나온 못이다. 남자와 여자가 왕을 죽이려 하는 음모를 꾸몄고 이들을 처형하라는 편지가 이 못에서 나왔다. 글이 나온 못, 서출지(書出池)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신라 제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 즉위 10년 (488년) 어느 날, 왕이 천천정에 행차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기사를 시켜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따라가게 했다. 남쪽 피촌(지금의 양피촌이니 남산의 동쪽에 있다)에 이르러 멧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기사는 돼지 싸움에 한눈을 팔다가 까마귀 간 곳을 잃었다.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데 노인이 못 속에서 나타나 편지 한 통을 바쳤다. 편지의 겉봉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개견이인사 불개일인사(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일부에서 서출지로 추정하는 양피지.
일부에서 서출지로 추정하는 양피지.

왕이 말했다. "두 사람이 죽느니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낫겠다. 편지를 열지 않겠다." 그러자 일관이 말하기를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을 가리키고 한 사람은 왕을 말하는 겁니다."

왕이 편지를 열었다. 편지는 ‘거문고 집을 쏘시오(射琴匣)’ 딱 한마디를 적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 활로 거문고 집을 쏘았다. 그 안에는 대전에서 분수하는 중이 궁주와 몰래 간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처형했다.’-『삼국유사』 ‘기이’1 사금갑(射琴匣).

왕비가 바람이 났다. 상대는 내전에서 불공을 드리는 분수승이다. 이 스캔들로 왕은 리더십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됐다. 남자로서도 씻을 수 없는 굴욕감과 좌절을 겪었다.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신뢰는 바닥을 쳤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왕은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소지왕은 고심 끝에 신의 한수를 찾았다. 상징조작으로 영웅신화를 만들고 더 높은 단계의 권위를 획득할 묘책을 토속 신앙에서 찾았다. 왕은 이 신화의 조연으로 쥐와 돼지, 까마귀와 노인을 발탁한다. 쥐는 근면과 현명함, 돼지는 다산과 복, 까마귀는 신령스러움을 상징한다. 노인에게는 도사나 신선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명활산성
명활산성

정월 보름, 왕은 명활산성에서 천천정으로 행차했다. 반월성의 기둥을 고치고 지붕 이는 공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왕은 명활산성에 머무르고 있었고 왕실 내전은 천주사에 있었다. 천주사는 반월성의 북쪽, 안압지의 서쪽에 있었다. 지금의 안압지 옆 연꽃단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한다. 왕이 명활산성을 떠나 천천정으로 행차하자 궁주는 내전으로 달려가 분수승과 사랑을 속삭였다. 이 소식은 즉각 왕에게 전해졌다. 왕은 내전으로 말을 몰아 궁주와 승려의 밀애 현장을 덮쳤고 왕비와 승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시나리오는 적중했다. 왕은 이 영웅신화가 자신의 재위 기간은 물론 만대에 연연세세 기록되고 유지되기를 바랐다. 상징조작에 동원된 돼지와 말, 까마귀에게 논공행상을 하는 한편 기념일을 제정했다. 정월보름날 오기일이 그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풍속에 매년 정월달의 첫 해일(돼지) 첫 자일(쥐) 첫 오일(까마귀)에는 백사를 삼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까마귀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냈으니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세속에서는 이를 달도라고 하는데 그것은 슬프고 근심스런 마음이 들어 모든 일을 꺼리고 금한다는 말이다. 그 못을 서출지라 한다. -『삼국유사』 ‘기이’1 사금갑.

천주사로 추정되는 연꽃 단지.
천주사로 추정되는 연꽃 단지.

『삼국유사』에서 익명으로 처리된 궁주와 승려는『화랑세기』에서 실명이 공개되면서 반전을 맞는다. 궁주와 승려는 선혜왕비와 묘심이다. ‘7세 설화랑’편이다. ‘금진의 아버지는 위화랑이고 어머니는 오도낭주다. 오도의 어머니는 선혜왕후이고 아버지는 묘심랑인데 곧 천주공의 아들이다.’ 천주공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직책으로 보인다. 불공을 드리던 왕실 내전을 천주사라고 보면 아귀가 딱딱 맞아 든다. 묘심은 천주사의 천주공으로 있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분수승이 됐고 불공을 드리러 온 선혜왕비와 사랑에 빠졌다. 선혜왕비가 소지왕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가 명기하고 있다.

서출지에 있는 이요정.
서출지에 있는 이요정.

깜짝 놀랄 일은 이어지는 『화랑세기』에서 계속된다. ‘묘심랑은 천주공의 아들인데 얼굴이 잘생기고 색사(色事)를 잘해 후궁들과 더불어 사사로이 정을 통하는 일이 많았다. 선혜왕후가 복을 빌러 절을 찾아 법을 따라 약속하여… 삼생(三生)… 묘심이 처형됐다.’ 중간중간 글자가 찌그러져 문맥이 끊기기는 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맥락은 분명하다.

바람둥이였던 묘심은 내전불당을 러브호텔처럼 활용했고 기도하러 온 후궁 여럿과 놀아났다. 선혜왕비까지 자기 여자로 만들었다. 둘 사이에서 오도라는 딸이 태어났다. 다만 둘 다 처형됐다는 『삼국유사』와는 달리 『화랑세기』는 묘심은 처형된 반면 선혜왕비는 왕비자리에서 쫓겨났다고 기록했다.

약밥.
약밥.

△약밥의 유래는 서출지

약밥의 역사가 1500년이다. 488년 소지왕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까마귀에게 감사의 뜻으로 정월 보름을 오기일(까마귀 제삿날)로 정하고 찰밥을 지어 까마귀 제사상에 올리면서 만들어졌다.

뒤로 오면서 약밥이 찰밥을 대신했다. 약밥은 대추, 밤, 잣, 참기름, 꿀, 간장을 섞어 찐 음식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비싼 재료가 들어가는 약밥 대신  쌀, 조, 수수, 팥, 콩으로 오곡밥을 지어먹었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이 1611년에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에 특별히 경주의 약밥이 별미라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의 팔도 명물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책이다. 가령 방풍죽은 강릉, 다식은 안동, 칼국수는 여주라고 소개했는데 경주에 대해서는‘약밥(藥飯):경주에서는 보름날 까마귀에게 먹이는 풍습이 있다.’라고 적었다.

이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까마귀 제사가 이어졌다는 것과 찰밥 대신 약밥을 제삿밥으로 올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약밥은 경주가 원조이고 서출지 사건에서 만들어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동완 역사기행 작가
김동완 역사기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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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2020-03-25 22:53:47
서출지, 정월대보름, 약밥, 오곡밥 등등
우리생활에서 익숙한 단어들의 유래를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이야기도 넘 재미있어 빠져듭니다.
다음편에는 또 무슨 이야기일까 기대하며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네요~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