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국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 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 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 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감상> 꽃에 물들고 산새소리에 들썩이며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면 봄은 오지 않은 것이네. 이랴 이랴! 소 몰며 쟁기질하고 돈두렁을 매끈하게 손질하는 총각이 없다면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네. 몸에 익힌 노동을 천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의 때에 맞춰 일하는 시기를 아는 사람들이 있기에 봄은 드디어 온 것이네. 자연과 더불어 살고 그 이치를 아는 처녀와 총각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것이고, 산야(山野)와 봄철을 일깨울 것이네. 그런데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눈 먼 세상이 아닌,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봄은 오긴 오는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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