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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설] 치자의 표정관리
[삼촌설] 치자의 표정관리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20년 03월 26일 17시 2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27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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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태풍이 오면 오페라 약속도 취소하고 비가 오나 안 오나 걱정만 하고 있어야 하나”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태풍 ‘매미’의 비상상태에서 대통령이 뮤지컬을 관람, 물의를 빚자 당시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의 대통령 옹호 발언이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최대 풍속을 동반한 태풍 ‘매미’가 남부지방을 강타,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혀 뮤지컬을 관람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상심이 컸다.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지만 국민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데는 미흡했다. 최 장관은 돌출 언행과 과잉충성 발언 등으로 장관 자리 14일 만에 물러났다.

성군이 다스리던 세종 때도 잇단 풍수해로 전 국토가 물에 잠기고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경향 각지에서 물난리가 잇따르자 국왕과 왕실은 물론이고 관원들까지도 ‘감선(減膳)’ 하도록 영을 내렸다. ‘감선’이란 자신에 대한 책망의 뜻으로 식사 때 반찬 가지 수를 줄이는 것이다.

세종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왕에 대한 하늘의 문책으로 받아들이고 재해를 입거나 가뭄이 들면 채식만 하면서 감선을 적극 시행했다. 원래 세종은 대식가이고 육식을 즐기는 식성이었지만 자신의 원초적 욕심을 억제, 채식과 소식을 병행했다. 신하들은 국왕의 건강을 염려, ‘감선’을 만류했지만 듣지 않고 군주로서 근신을 솔선수범했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노하여 천재지변을 일으켜 왕에게 경고하고 벌한다는 ‘재이설(災異說)’을 믿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왕은 자신의 정치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반성하면서 근신했다. 왕조시대의 천재지변은 불가피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늘의 뜻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 시대 임금들은 홍수, 가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일식이나 혜성이 나타나도 조신하거나 두려워하는 척 코스프레라도 해야 하는 것이 무한 책임을 지는 치자의 도리였다.

통치자의 사생활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먼저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몸가짐과 표정관리에 신중해야 하는 것이 통치자의 책무다. 코로나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와중에 대통령의 파안대소는 역병의 공포에 시달리는 국민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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