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감염병 확산 여파에 강제 연차 소진·사직 등 강요
시민사회단체·노동계, 근로여건 개선 대안 '상병수당' 제시

자료 사진(본 기사와 무관)
# 직장인 김 모(38) 씨는 얼마 전 사직서를 냈다. 올겨울 감기를 달고 살 정도로 면역력이 약해져 최근 코로나19 감염의 예방의 차원에서 한 달 여 휴가를 내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NO”였다. 10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최근 고된 업무로 몸도 많이 허약해 있는 상황이라 건강도 챙기고 가족들도 돌볼 겸 퇴직을 결심했다.

# 개인병원에 재직 중인 정 모(29) 씨는 얼마 전 심한 복통에 병가를 내려다 마음을 접었다. 상사의 눈치가 보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업무 공백을 메워야 하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힘겹게 업무를 해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비롯한 ‘아프면 집에 있기’ 등을 정부가 권고하고 있지만 사실상 직장인들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산업재해가 아닌 상황에서 업무와 연관 없는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장기간 휴가를 낸다는 것은 현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아플 때 쉬는 것은 고사하고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기업들의 사정도 어려워지면서 강제 연차 소진이나 무급휴직, 사직 등을 강요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시민단체인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한 주간 받은 857건의 제보 중 315건(36.8%)이 코로나 19로 인한 무급휴가와 해고, 권고사직 등과 관련한 제보였다.

제보 내용을 분석하면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들이 연차강요-무급휴직-사직종용의 순으로 직원을 괴롭히고 있다”며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없다면 노동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회사는 코로나 19를 무기 삼아 불법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코로나로 인한 경영악화와 같은 회사의 귀책사유로 인한 휴직은 평균임금의 70%를 줘야 하는데 무급휴직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그만두라고 협박한다”며 “권고사직으로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직장인들에게 정부지원금을 ‘꿀꺽’하고 싶은 사장들은 ‘사직서’를 강요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 회사가 최소한의 비용으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며 “코로나 갑질 전염병이 직장인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아플 때 쉴 수 있는 직장인들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상병수당’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상병수당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업무상 질병 외에 일반적인 질병과 부상으로 치료받는 동안에 상실되는 소득이나 임금을 현금 수당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보전해주는 급여를 말한다.

이미 독일과 일본,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은 의료보험이나 다른 공적 사회보장 형태로 상병수당을 주고 있으며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상병수당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법 제50조의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 상병수당의 법적 근거는 있지만 시행령에서 구체적 임의급여를 장제비와 본인부담금 두 종류로만 한정해 사실상 제외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지난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생활방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범정부 계획의 일환으로 ‘사업장 내 거리 두기 지침’을 마련해 일반 직장인과 사업주에게 ‘아프면 집에 있기’, ‘아파하면 집에 보내기’ 등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세심하게 실천하는 등 ‘일상적 방역’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최근 정례 브리핑마다 강조하고 있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은 이달부터 오는 11월까지 ‘상병수당 도입 논의를 위한 기초연구’를 추진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정목 기자
이정목 기자 mok@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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