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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22. 김선익 봉화 유기장
[명인] 22. 김선익 봉화 유기장
  • 박문산 기자
  • 승인 2020년 03월 29일 21시 23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30일 월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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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숨결·혼 깃든 유기…하나의 예술 작품
유기마을 전경 드론 촬영

조상의 전통과 삶의 지혜가 깃든 생명의 그릇, 청아한 소리와 황금빛 자태의 ‘봉화유기’.

유기(鍮器)는 한국인의 마음을 담아내는 민속용기로 우리 조상만큼 유기를 애용한 민족이 있었을까.

잘 만들어진 유기는 그 색상이 밝고 맑으며 소박하지만 은은한 광택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고유한 한국 전통의 멋을 담고 있다.

스테인리스 그릇이 주는 차가운 느낌과는 달리 유기는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영남의 유기제조 발상지인 봉화군 봉화읍 삼계리와 신흥리 유기마을에서 4대째 유기를 만들고 있는 ‘내성유기’ 김선익(84) 유기장을 만나 봉화유기의 아름다움과 전통에 대해 들어보았다.
 

제기용품 유기

△전국 유기 수요 70% 공급했던 봉화 유기.

경북 봉화군 봉화읍 삼계리 매봉산 기슭에 위치한 신흥리 유기마을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기로 이름을 떨쳐 놋점거리, 놋갓점이라고 불렸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봉화 지방 관가에서 유기를 제작하기 시작해 그 후 민가에 퍼져 한때 고을 전체가 놋갓점을 형성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봉화 유기 역사는 500년쯤을 거슬러 올라간다.

유기

이는 백두대간의 양백지간에 위치해 쇠를 녹이는 데 필요한 숯 생산이 용이하고 낙동강 700리의 발원지인 내성천의 풍부한 물을 통해 제련 시 우수한 유기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920년 전후에는 마을 70여 가구 중 30~40여 가구가 유기제작을 했으며, 이곳에서 나오는 유기는 전국 유기 수요의 70%를 차지할 만큼 그 명성이 대단했으며 오늘날 유명한 안성유기에 영향을 준 것도 봉화 유기장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번성했던 봉화유기도 태평양 전쟁 때 놋그릇을 공출 명분으로 모조리 빼앗아가 생산기반이 약해졌고, 해방 후 생활양식이 바뀌어 새로운 합금제품이 자동화된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며 유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쇠퇴하며 봉화의 유기 공방들도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는 지난 1994년 경북무형문화재 제22호로 나란히 지정된 ‘내성유기’김선익 옹과 ‘봉화유기’고해룡(2003년 작고) 옹 두 집만이 그 명맥을 가업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내성유기는 1대 김용범, 2대 김대경, 3대 김선익, 4대 김형순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내성유기 공방

△4대째 이어온 ‘내성유기’전국 10대 명품 선정...웰빙과학 접목으로 유기 대중화.

어릴 때 조부로부터 유기 만드는 방법을 배운 김선익 유기장은 봉화유기의 산증인이다.

방짜유기-징

구리에 아연을 넣은 주동(鑄銅)으로 만드는 유기를 ‘주물유기’라 하고, 아연대신 주석을 넣은 향동(響銅)으로 만드는 유기를 ‘방짜유기’라 한다.

김선익 유기장

김선익 유기장이 운영하는‘내성유기’는 주물유기다.

산업화가 되면서 나무에서 조개탄, 전기로 연료가 변화하고 공구가 기계화돼 옛 모습을 잃어가는 추세지만 아직도 거의 수작업에 의지한다.

생산과정도 8명의 기술자들이 부질대장과 담금질, 연마, 광내기로 분업화하여 완성한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숱한 메질과 불질을 반복해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유기는 하나의 예술품에 가깝다.

내성유기 공방

내성유기에서 출품한 유기 제품은 2010년 농어촌산업박람회에서 전국 각종 183개 명품들과 경쟁해 10대 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유기의 보온·보냉 효과와 살균력이 알려지면서 유기가 웰빙식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예부터 유기는 상당한 살균 효과가 있어 물과 함께 미나리를 담가 놓으면 거머리를 잡아 내고 수라상의 독 여부를 놋수저로 검사했다고 전해지며, 농약검출이나 ‘O157’균을 박멸하는 능력도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2018년에는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은 경일대의 경북노포(老鋪)기업지원단에서 봉화의 유기의 특성을 살려 얼음과 살균이 동시에 가능한 유기아이스 제품을 개발해 한국기초조형학회 국제전시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웰빙과학 접목으로 유기의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처음에는 생계의 한 수단으로 유기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조상님의 숨결과 혼이 깃든 유기를 만든다는 자긍심이 앞선다”고 말하는 김선익 유기장의 눈빛에서 봉화유기에 대한 40년 외골 인생의 깊은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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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산 기자 parkms@kyongbuk.com

봉화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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