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꽃이야?
꽃 이름을 물으면
엄마는 내 손바닥에 구멍을 파고
꽃씨를 하나씩 묻어 주었네
봄맞이꽃, 달개비, 고마리, 각시붓꽃, 쑥부쟁이
그러나 계절이 몇 번씩 지나고 나도
손에서 꽃 한 송이 피지 않았네
지문을 다 갈아엎고 싶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다시 꽃 이름을 물어오네
그제야 다 시든 꽃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 이름이 궁금했네
엄마는 무슨 꽃이야?
그녀는 젖은 눈동자 하나를 또
나의 손에 꼭 쥐어주었네
<감상> 엄마는 화려한 꽃이 아닌 자잘하고 수수한 들꽃을 아주 좋아했답니다. 꽃 이름을 물으면 엄마는 꽃씨를 손바닥에 묻어주었는데, 내 손에서 한 번도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지문마저 지우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나는 들꽃의 이름만 자꾸 물었지, “다 시든 꽃”인 엄마라는 이름을 물은 적이 없습니다. 떠나가신 엄마는 눈동자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주었는데, 한(恨) 많은 눈동자였습니다. 그 눈동자를 다 읽을 수 없어 내 눈동자마저 젖어서 출렁입니다. (시인 손창기)
- 기자명 길상호
- 승인 2020.03.29 16:27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30일 월요일
- 지면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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