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대부분 역사상 사건과 인물의 평가는 제각각 이미지 영향을 받는다. 사서의 기록과 학자들 연구로 형성된 역사적 심상, 소설과 연극이 창조한 문학적 심상, 그리고 일반 민중의 뇌리에 새겨진 대중적 심상이 그것이다. 특히 예술 작품은 이런 선입견 각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대표적이다. 그가 창작한 조어와 표현은 ‘셰익스피어리즘’이란 용어가 생겼을 정도로 유명하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같은 격언은 지금도 널리 인용된다.

거대한 제국인 미합중국 지도자 가운데 이미지가 조작 혹은 왜곡된 위인도 있다니 의외다. 신화와 전설이 아닌 완벽한 기록을 가진 현대사가 자랑인 때문이다. 짧은 건국의 젊은 나라인 미국은 세계 최초로 광대한 영토를 품은 공화국.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이다. 마르크스는 평했다. 미국은 위대한 민주 공화국 사상을 가장 먼저 탄생시킨 곳이라고.

한데 참신한 평판의 케네디 대통령 신화는 철저히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폴 존슨을 비롯한 사가들에 의해서다. 그가 집필한 ‘미국인의 역사’는 케네디가 금력과 매수를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한 사례를 열거한다.

대명천지 20세기 중반에 최고의 강대국에서 벌어진 음모란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케네디는 부친에 의해 대통령으로 만들어졌다. 장남이 전사하면서 차남인 그가 역할을 떠맡았던 것이다. 언론 조작·마피아 결탁·허위 건강 정보·가짜 학위 논문·사재기 베스트셀러·참전 경력으로 전쟁 영웅 미화·저명 지식인 이용 기사 게재 등등 다양한 행위다.

이런 국민적 기만책 연출로 권력 획득이 가능하다니 민중의 분별력은 정말로 허술하다. 총선을 앞둔 우리도 비슷한 본보기는 없는지 후보자를 주시할 일이다. 예전에 인재 선택의 표준으로 삼았던 ‘신언서판’은 영악한 가면의 본색을 들추긴 쉽지 않다.

대체로 우리는 외모로 누군가를 헤아린다. 우선 얼굴과 말투를 보면서 성격과 능력을 가늠한다. 첫 인상이 그대로 굳어지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들 외적인 형상과 업무 실적에 관한 영국의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요컨대 외관상 역량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작자가 실제론 그 반대인 상황이 허다했다. 유권자는 허우대 좋고 듬직해 보이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나 잘못된 빈도가 흔하다는 뜻이다. 성격 두루뭉술한 선량도 바람직하진 않았다. 지역구 이익을 위해 충돌하기보다는 대충 얼버무리는 야합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마도 역사에 관심이 깊은 유권자는 그가 살아온 족적, 소위 삶의 스토리에 관심을 갖는다. 곤경을 극복한 자수성가 또는 인생 역전의 드라마틱한 성공 신화는 서민층 희망인 탓이다. 그런 사다리의 주인공은 리더의 훌륭한 자격이라 여긴다. 사회 경험이 일천한 지망생은 역지사지하는 공감력이 약하지 않을까.

거개의 군중은 역사의 벤치 멤버이다.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의미다. 투표장에 가서 선거하는 행동 외엔 다른 무엇이 없다. 그들의 대표를 뽑을 선거권만 주어진 진정한 국민이 반드시 표결에 참여할 까닭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통치자 페리클레스는 연설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국가를 떠받치는 시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2500년 후 유럽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명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투표는 짧고 역사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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