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코로나19의 다른 이름이 우한폐렴입니다. 현재 우리의 주적(主敵)은 폐렴입니다. 저는 수년 전 폐렴을 크게 앓아 본 적이 있어서 이 병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환자가 아주 견디기 힘든 병입니다. 그런데 항간에 나도는 “젊은 사람에게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80%는 경증 환자에 그친다.”라는 말 탓인지 일부 염려스런 이기적 방심행동들이 돌출하고 있어 크게 걱정이 됩니다.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역병을 앞에 두고 “나는 (평소 건강하니) 괜찮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호흡기를 노리는 폐렴일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숨쉬기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생명유지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들숨은 생명 지속에 가장 소중한 행위다. 그 들숨이 내게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기에 마스크를 애써 구해서 썼다. 이번 들숨이 내 생애 마지막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불교에서 가르치는 ‘죽음에 대한 호흡 마음챙김’이다. 마스크를 끼고 들숨을 조심조심 들이키니, 이것이 내 생애 마지막 들숨일 수 있고 그래서 날숨으로써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타인은 결코 나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연기의 존재원리를 진정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타자의 한 부분이었던 것을 매 순간 들이키니, 나는 타자의 일부요 타자도 나의 일부인 것이다.[이강옥, <대구문화> 4월호 권두에세이]

평소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숨을 쉬며 살고 있지만 일단 그 행동에 어려움이 닥치면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갑자기 폐렴에 걸렸을 때 저의 눈에 불현듯 ‘삶의 끝자락’이 보였습니다. 온몸에 고열과 통증이 오고 열흘 남짓 아무것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탈진상태를 경험하면서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어떤 터널의 끝이 저만치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일종의 멘탈 붕괴(崩壞) 현상이 닥쳤습니다(삶의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게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회복은 했습니다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저의 가정 주치의 선생님은 “그때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라고 지금도 말 하십니다. 이 병원 저 병원 거쳐서 마지막으로 대학병원 호흡기센터에 가서 최종적으로 완치될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방심할 수 없는 무서운 병이 폐렴입니다.

그런 경험 탓인지, 주역의 열다섯 번째 ‘지산겸’(地山謙), 겸(謙)괘가 특히 요즈음 제게 각별한 느낌을 줍니다. 이 괘는 겸손히 자신의 임무를 다 마칠 것을 권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겸(謙)은 형통하니 군자가 (자신의 지위를 끝까지) 마치니라(謙亨君子有終). 「단전」에서 말하기를, 겸손이 형통한 것은 천도(天道)가 아래로 건너서 광명하고 지도(地道)가 낮은 데에서 위로 행함이라, 천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여 겸손한 데에 더하고, 지도는 가득 찬 것을 바꿔서 겸손한 데로 흐르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쳐서 겸손한 데에 복을 주고, 인도(人道)는 찬 것을 미워하며 겸손한 것을 좋아하니(人道惡盈而好謙), 겸은 높아도 빛나고 낮아도 넘을 수 없으니 군자의 마침이라.”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139쪽] 천지, 귀신, 인간이 모두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고 주역은 말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겸손을 옹호합니다. 바야흐로 코로나19라는 귀신이 인류에게 ‘가득 찬 것을 해’치고 있는 시절입니다. 인류가 서로에게 겸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큰 반성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서로 겸손히, 끝까지 마치는 것의 소중함을 명심하고 나와 타자의 들숨을 위해 적극 자중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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