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지는 소리 듣다
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달려오던
바람도 복사꽃 지는 소리에 잠시 허파를 닫는다
복사꽃으로 밥 비벼 먹고 싶다
국물 없이도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향기,
아찔할 것 같다
아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은 대낮,
복사꽃 지는 소리에 천지사방이 정갈해진다
밥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다
아주 헛배가 부르다
물결처럼 펼쳐진 복사꽃 위에 누워서
배를 둥둥 두드린다 둥둥둥,
내 몸이 한 척의 배가 되어 뱃고동 소리를 낸다
아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으니
아무 곳으로나 흘러가면 될 터
이슥할 무렵 아무 곳에나 정박하면
그곳 사람들에게 복사꽃 지는 소리에 대해 얘기해주리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사랑 얘기도 슬쩍
후렴처럼 들려주리라



<감상> 바람 때문에 아니라 나무의 마음 때문에 복사꽃이 지는 것이다. 때가 되어야 꽃이 지고, 때가 되어야 꽃 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복사꽃 지는 소리에 배가 저절로 부르고, 향기에 취해 둥둥 내 몸이 한 척의 배가 된다. 꽃잎 날리는 모습은 배가 둥둥 떠다니며 뱃고동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물결처럼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면 어디로 정박할까. 아무 곳에나 정박해도 괜찮다. 아무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사랑 얘기, 아니 잊혀지지 않는 사랑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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