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한동대 교수
정진호 한동대 교수

코로나19가 가져다준 변화는 충격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코로나의 거침없는 감염 속도 앞에서 각국의 병원 시스템이 붕괴되며 환자와 병상이 넘쳐나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전 세계는 팬데믹의 공포에 휩싸였다. 주가가 폭락하고 세계의 경제가 무너지고 기업이 도산하고 있다. 이제 대공황의 우려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그것은 치열한 패권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 경제의 동시 폭락이 예견되기에 심각성을 더하는 것이다.

피터 자이한은 그의 저서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The Accidental Superpower)’에서, 지난 세기 어떤 전쟁에서도 자유로웠던 미국 본토의 지정학적 우위를 예로 들면서 장차 미국의 패권시대는 한 세기 이상 더 지속될 것이라 장담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하기 위해 맺어진 브래튼우즈 협정과 페트로달러 시스템에 더하여, 최근 셰일 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자급 국가로 올라선 미국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졌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우주굴기’와 중국몽(中國夢)을 향한 ‘100년의 마라톤’조차 미국에는 신경은 쓰이나 가소로운 도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그 모든 신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팬데믹 코로나는 미국의 지정학 논리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미국이 세계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지난 세월 추구해왔던 자유무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질서 속에서 세계화와 시장화로 연결된 지구촌은 더 이상 고립무원이 존재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셰일혁명 이후,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계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보를 해왔다. 지구환경보호협정인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하고, TPP 태평양동반자협정탈퇴, 이란핵협상파기, 멕시코 난민퇴출, 방위비인상 요구, 호르무즈해협 파병요구 등 트럼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그 같은 미국의 보호장벽 쌓기와 봉쇄 전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보여주었고 오히려 부메랑의 타격을 입고 있다. 코로나는 비자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실로 이것은 인류를 향한 코로나의 역습이다. 갑자기 다가온 비대면 사회에 대한 당혹감 좌절감 두려움 속에서 어떤 국가의 공권력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을 코로나는 보란 듯이 유유히 밀어붙이고 있다. 전 세계의 정부가 막아서고자 경찰력과 군대를 동원해도 물리칠 수 없었던 각종 반정부 시위와 집회들이 중지 해산되었다. 중국 공안의 어떤 무차별 공격에도 요동치 않았던 홍콩의 민주화 우산시위가 사라졌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도 프랑스의 노랑조끼 시위도 콜롬비아 내전도 중지되었다. 쉼 없이 지속되던 반정부 광화문 태극기 집회마저 멈추어 서고 말았다.

전 세계의 대규모 종교 집회를 중단시켰다. 카톨릭도 개신교도 불교도 모슬렘도 코로나 앞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었다. 종교집회가 지역감염 확산의 온상으로 밝혀지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종교집단은 사회적 이단아로 손가락질받게 되었다. 국가적 사회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종교집단의 반사회적 행위는 한국의 신천지가 그랬듯이 결국 스스로의 이단성을 드러내며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오히려 대형화, 물질화, 상업화로 물들었던 종교집회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예배행위로 환원되면서 종교의 본질,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으로 넘어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종교 예배는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코로나는 평등의 가치를 우리에게 각인시켜주고 있다. 코로나19 앞에서는 어떤 국가도 어떤 부자도 어떤 권력자도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발병 초기에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비위생적인 아시아의 질병 정도로 과소평가하려던 G7 국가를 비롯한 과거의 서구 제국주의 클럽들이 현재 가장 큰 곤경에 처하였다. 스페인의 공주도 영국의 총리도 이란의 부통령도 코로나를 피할 수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모든 자유주의 국가가 재난지원금의 명목으로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사회주의식 평등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기생충 영화가 전 세계인에게 화두로 던졌던 양극화의 문제가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직면할 세상이 대단히 큰 체제 변화로 나타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1929년 대공황 시 채택되었던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의 도입이 불가피할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었던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의 가치가 회복되고 있다. 일 중독으로 황금만능주의로 권력지상주의로 가정을 내팽개치고 돌아다니던 아빠와 엄마들이 온종일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연이 취소되고 연봉 협상을 위해 쉼 없이 달리던 각종 스포츠의 프로선수들조차 가정으로 돌아갔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듯 가정에서의 안식을 반강제로 갖고 있는 것이다. 폐수와 미세먼지를 내뿜던 공장들과 작업장들이 문을 닫자 지구환경이 정화되고 있다. 코로나는 자신만을 위해 담을 쌓고 이기적 행보를 일삼는 어떤 국가도 어떤 집단도 어떤 개인도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지구촌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연대적 공동체인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벚꽃과 진달래는 여전히 우리 곁에 피고 또 지고 있다. 우리는 대공황의 공포에서 속히 벗어나길 바란다. 그러나 코로나가 가져다준 전 지구적 각성과 반성의 시간은 우리에게 잊혀서는 안 될 가치로 남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학생들의 에세이를 채점하다가 눈에 뜨이는 구절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어쩌면 자연에게는 무차별적으로 세상을 훼손했던 인간이 바이러스이고 이번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백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정진호 한동대 교수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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