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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코로나 19 미래’와 ‘경북·대구인의 품격’
[데스크 칼럼] ‘코로나 19 미래’와 ‘경북·대구인의 품격’
  • 곽성일 편집부국장
  • 승인 2020년 04월 05일 16시 09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4월 06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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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편집부국장

지진의 긴 터널을 지나니 코로나 세상이 펼쳐졌다.
땅이 취한 듯 흔들리는 순간을 못 견뎌 하며 정신없이 달려왔다.
더러는 놀란 가슴을 부여안았고, 누구에겐 그토록 원하던 무대가 됐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는 달리는 지진 열차의 승객이었다.
비좁은 객실에 갇힌 사람들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현실에 불만을 쏟아내기 급급했고, 또 다른 이는 실현성 없이 내뱉는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즐거워했다.
같은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지진 열차는 어느새 ‘코로나19’ 열차로 이름이 바뀌었다.
짧고 강렬한 흔들림에 대한 ‘불안의 추억’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나간 순간의 기억은 현재의 불안에 묻혀갔다.
그토록 불안해했던 지진 경보음은 코로나 확진자 발생을 알리며 수시로 울려대는 공포의 일상이 됐다.
태산 같던 지진의 무게는 코로나 앞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아직도 진행형인 지진 해법은 표류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코로나 앞에선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땅의 흔들림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비교할 만한 상황이 못됐다.
지진은 찰나의 순간이고 대상이 명확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진과 달리 코로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인간의 거리 두기’로 기존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태세다.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
중세 유럽의 ‘페스트’와 대항해 시대의 ‘천연두’, 전쟁과 대공황 촉발한 ‘스페인 독감’ 등이다.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코로나 이후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시민적 역량 강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자의 동선을 제한하기 위해 철저한 감시의 필요성이 대두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도구가 발전할 것으로 보여 사생활 침해가 정당시 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중 선택을 강요당한다. 고립을 피해 글로벌 연대로 바이러스를 극복해야 한다.
사회적 관계망도 예전의 상황을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접촉으로 전염되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는 ‘미래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영향으로 감정 표현방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급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미풍양속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그 변화의 물결 속에 인간은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사회적 고립을 피하기 피해서는 잃어버린 인간 관계망을 보완하기 위한 IT 기술의 발전의 눈부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적응을 하느냐, 못 하느냐는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힘든 상황과 암울한 미래 전망 속에서도 대구·경북인의 코로나 대처 활동은 눈부시다.
코로나 최전선 경북과 대구지역민의 사투는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경북·대구지역 의료진의 희생적 치료와 시민들의 침착한 대응을 세계가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 생명을 담보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경북·대구지역민의 품격은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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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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