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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포럼] 2020의 아름다운 봄. 잔인한 4월
[경북포럼] 2020의 아름다운 봄. 잔인한 4월
  •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 승인 2020년 04월 06일 16시 0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4월 07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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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4월. 생명이 기지개를 켜며 동면에서 잠을 깬다. 봄비 내려 시샘하듯 서로 다투어 피어나는 봄날이다. 땅속 깊이 감추었던 색깔과 향기를 아낌없이 쏟아낸다. 땅은 어디에 하양, 노랑, 빨강, 분홍, 보라 이 많은 색소를 머금었다 아낌없이 토해내는가.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사꽃들이 정신없이 터지더니 라일락 향기로 4월이 만발한다. 아름다운 생명의 계절, 4월이다.

박목월 시인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하고 4월을 낭만적으로 노래했다.

목련의 계절, 생명의 계절이지만 베르테르의 사랑처럼 붙잡아 둘 수 없는 4월이기에 빛나면서도 눈물 어린 계절이었는가. 잔인함이 묻어나는 사월인가.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느니”라고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다.

4월이 잔인한 것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작고 연약한 씨앗이 겨울의 언 땅을 뚫고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추억이나 욕망 없이 모든 것이 잠든 겨울이 오히려 따뜻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유럽을 황무지로 상징화한 시(詩)다.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의 봄을 맞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럽다. 정신적 지주도 없고 추구할만한 가치도 없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면서 부활을 위한 꿈틀거림보다 겨울의 평화로운 죽음과 망각의 잠을 더 원하고 있다. 망각의 겨울잠에서 기억과 의식을 일깨워주는 사월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잔인했을 것이다.

2020년의 봄. 사월은 잔인한 달인 것 같다. 첫째, 코로나19로 아름다운 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현실이 잔인하다. 봄의 생명력을 구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예방에 매몰되어 버린 현실이다.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전쟁터에서 하반신 마비가 된 채털리 남작에겐 아내 콘스턴스 리드의 젊은 아름다움이 견디기 어려운 잔인함이었다. 코로나19로 골몰하는 의료계나 관계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에게 이 봄의 화사함이 오히려 잔인함일 것이다.

둘째, 4·15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에게는 이 사월이 잔인한 달로 느껴질 것이다. 당선이 되면 고개를 빳빳이 들지 몰라도 당선자나 낙선자나 지금은 죽을 맛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 죽을 맛을 못 잊어 하는 단골손님이 있다.

셋째,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의 잔인함이다. 텔레그램 박사방, N번방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되었다. 양심을 떠나 성을 쾌락 탐닉의 도구로 삼는 무리들. 성적 부도덕과 물욕이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다른 사람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가는 몹쓸 인간들. 정말 악랄하고 잔인한 행위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음이 부끄럽다.

넷째, 경제가 어려워 죽니 사니 하면서 살려달라는 하소연이다. 오히려 배고프던 ‘보릿고개’ 시절이 그리운 모양이다. 14세 소년이 ‘미스터 트롯’에서 ‘보리고개’를 열창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여 박수를 보냈다. 정말 ‘그 시절 그리워진다’였다. ‘보릿고개’를 겪은 삶의 잔인함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지만 대기업이나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나 지금이 경제적으로 잔인한 달이라고 아우성이다.

위기가 기회. 2020의 봄, 잔인한 사월이 넉넉한 삶의 기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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