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나이 들면서 제 인생을 한 번씩 뒤돌아봅니다. 어려서부터 곡절 많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비교적 평탄했습니다. 진퇴양난도 많았지만 전화위복이나 새옹지마도 없지 않았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제 인생의 전화위복은 글쓰기였습니다. 이런저런 선택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하나 남은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20대 이후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것이 제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본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이런 글도 쓰면서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삽니다. 고비 고비 정체성 위기를 겪을 때마다 글 복이 터져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런 순환이 10년마다 한 번씩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1983년 전후, 1993년 전후, 2003년 전후, 2013년 전후 유난히 글 복이 터졌습니다. 1983년에 작가로 등단을 한 연후 나온 작품집이나 기타 저서들이 대체로 그 시기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터진 글복은 올해 나올 책까지 열권의 책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징크스도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는 일들은 계절을 탔습니다. 연초에 시작한 것들은 늘 시들했습니다. 그런데 한여름에 시작한 것들은 왕성하게 풀려나갔습니다. 성공한 새로운 도전들은 늘 한여름에 이루어졌습니다. 어제 우연히 어떤 책을 보다가 제 생일과 이름이 ‘한 여름의 운세’와 관련이 있다는 대목을 접했습니다. 물론 그런 ‘신비한 지식’을 믿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신비한 지식은 믿지 않습니다. 다만, 살아오면서 겪은 ‘신비한 경험’들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원인을 아는 것이든 모르는 것이든)제게 일어난 일들을 저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으면서도 주역을 매일 조금씩 읽는 것도 그 까닭에서입니다. 모르긴 해도 주역을 읽다 보면 자기에게 일어난 ‘소중하고 신비한 경험’을 허투루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도 삶의 원리와 원칙, 반성과 교훈을 발견하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전혀 나잇값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우레가 땅 가운데 있는 것이 복(復)이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 장사와 나그네를 다니지 않게 하였으며(至日閉關 商旅不行), 후왕이 나랏일을 살피지 아니하니라(后不省方). -- 방(方)은 일이다. 동지는 음이 돌아가고 하지는 양이 돌아가므로 복이 되면 적연히 아주 고요해진다. 선왕은 천지를 본받아 행하는 자이다. 동(動)이 돌아가면 정(靜)해지고 행(行)이 복귀하면 지(止)해지고 일이 돌아가면 일이 없게 된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197~198쪽]

주역 스물네 번째 괘는 ‘지뢰복(地雷復)’, 복괘(復卦)입니다. “복은 형통하니 드나듦에 병통이 없어 벗이 와야 허물이 없으리라. 그 도를 반복해 이레만에 회복하니, 갈 바를 둠이 이로우니라.”가 경문입니다. 초구만 양이고 나머지는 다 음효입니다. 만물이 돌아감을 알고(갈 바를 두고) 행하면 (벗이 곁에 있고)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주역의 가르침에 순응하려고 할 경우, 돌아갈 때를 분명히 아는 것이 관건이라 할 것입니다. 스스로 평가해 보건대, 총론에는 강한데 각론에 가서 약해지는 것이 저의 큰 약점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본업이든 취미든 성취가 분명하지 않고 말미에 가서는 늘 흐지부지하기 일쑤였습니다. 본디 타고난 재주가 박약하고 보고 배우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압니다. 반성이 많이 됩니다. 그나마 드나듦에 큰 병통이 없었던 것을 지복(至福)으로 여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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