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933년 1월 독일 총리에 임명된 나치당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는 독재 권력 구축을 통해 독일 국민을 완전히 국가의 통제 하에 두고자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도로, 철도 및 주택 건설 등의 대규모 공공사업 및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금지되었던 대대적인 재무장 프로젝트 등을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은 채 밀어붙임으로써 1920년대부터 하이퍼인플레이션 및 높은 실업률로 신음하던 독일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길거리에서 아사(餓死)한 사람들의 사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극도의 위기 상황이었던 패전국 독일이 이제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역동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모습을 본 이웃 나라 영국의 엘리트들은 히틀러의 통치력과 정책 노선을 뜨겁게 지지하였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사주였던 로더미어(Rothermere) 자작, 영국 최고의 부동산 부호였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공작 등을 비롯한 영국 지도층의 핵심 인사들은 전후 독일이 겪고 있던 초유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히틀러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여 독일 국민을 일치단결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히틀러가 시행한 유대인 차별 정책 등에는 눈을 감아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독일 국민의 절대적 복종을 기반으로 한 히틀러의 유럽 정복이 본격화되자 히틀러의 리더십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영국의 상류층 인사들은 대거 몰락하였고, 영국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세계인이 생명의 보존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전체주의와의 힘겹고 처절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미국과 유럽을 휩쓸면서 아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가 서양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하자 한국의 여러 언론 매체들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서양 우월주의’가 종식되고, 동양 사회에 대한 서양 사회의 부정적인 편견을 지칭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종식되었다고 연신 팡파르를 울리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사태 초기에 사회 통제에 실패하여 지금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을 악화시킨 ‘느슨한’ 서양 사회의 가치는 몰락할 것이고, 개인보다 사회와 국가를 앞세우고 위계와 유대를 중시함으로써 초기부터 국가가 강력하게 주도한 봉쇄, 격리 및 거리 두기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꽉 짜인’ 동양 사회의 가치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보편적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개인보다 국가와 사회를 극단적으로 앞세우며 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까지 국민 간의 유대를 절대적으로 강화하려 했던 자신들의 끔찍한 역사를 서양인들은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런 체제와의 일전을 치러 승리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함부로 침해되지 않는, 개인의 행복과 성취를 최우선시하는 문화적 토양 위에 지금의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 또한 서양인들의 뇌리 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동양 사회와 달리 팬데믹에 대처한 경험이 적은 서양 사회가 지금 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고, 극도의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자신들이 지금껏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냐라고 울부짖는 것 또한 극히 인간적이다. 하지만 사태가 지나고 한숨 돌리게 된 후에도 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로 과연 서양 사회를 여태껏 지탱해온 가치와 편견이 그렇게 무게가 없는 것일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오리엔탈리즘’이 종식된다는 확신은 하루라도 빨리 서양 사회를 앞지르고자 하는 동양 사회의 ‘조급함’이 담긴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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