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효람은 청나라 건륭제 때 기지가 넘치는 신하였다. 어느 해 여름 건륭제는 더위를 피해 산장에서 피서를 했다. 신하들을 데리고 인근에 있는 사찰을 방문한 건륭제는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미륵불이 눈에 띄었다. 미륵불을 보는 순간 기효람을 한번 놀려주고 싶었다.

건륭제는 기효람에게 물었다. “미륵불이 왜 날 보고 웃고 있소?” “부처가 부처를 만났기 때문에 웃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폐하께서는 바로 문수보살이 환생한 것이오니 바로 지금의 살아 있는 부처가 아니십니까. 산 부처가 와서 부처를 만났으니 그야말로 부처가 부처를 만나 웃고 있는 것입니다.”

기효람의 대답에 흐뭇해진 건륭제는 다시 기효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부처가 경을 보고도 웃는데 그것도 그렇소?” 그렇다고 대답하면 황제와 대등한 지위가 돼 불충으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기효람은 식은땀이 흘렀지만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소인이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웃는 것입니다.” 건륭제는 기효람의 재치를 칭찬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건륭제는 할아버지 강희제, 아버지 옹정제가 부국강병으로 다져놓은 치세의 바탕을 물려받아 60년간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태평성대를 지속시킨 명군이었다. 영토확장에도 주력, 10차례 정복사업에서 모두 승리, 자신을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 불렀다. 외몽골, 신장 위구르, 티베트 등을 중국 영토에 편입, 중국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제국을 이뤘다.

건륭제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강희제는 아들 옹정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손자 건륭제를 너무 좋아해 옹정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한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냉엄함을 보충하고, 냉엄함으로 너그러움을 보충하면 정치가 조화롭게 된다.’ 건륭제의 치세철학이다.

“오로지 강함과 부드러움을 조화시키며 경쟁하지도 않을 것이고, 급히 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평안하고 정직한 정치가 되도록 하겠다.” 국민을 평안하게 하겠다는 건륭제의 치국 방침이다. 국민을 두 동강 낸 우리 정치는 너무 고달프다. 고달픔을 벗어나는 길은 총선의 선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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