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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걷다] 6. 앞 다투어 피는 꽃, 이름 불러주는 기쁨
[팔공산을 걷다] 6. 앞 다투어 피는 꽃, 이름 불러주는 기쁨
  • 임수진 수필가
  • 승인 2020년 04월 09일 18시 25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4월 10일 금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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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 저수지 둑길 지나 둘레길 4코스…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유명
태조 왕건 흔적따라 걷다보면 발아래 펼쳐진 수채화에 감탄사 절로
둘레길 4코스 시작점

내동 저수지 둑길이다. 둘레길 3코스 끝이자 4코스 시작점이다.

곡선으로 난 길이 풍경으로

개나리가 노랗게 핀 임도가 이어졌다 곡선의 길이 무척 선해 보인다. 자전거 탄 사람의 뒷모습이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내동마을 전망대
전망대에 내려다 본 내동마을

언덕배기에 전망대 쉼터가 있다. 운동기구로 잠시 몸을 푼 후 내동마을을 내려다보며 준비해 간 커피를 마셨다.

Y자 길 (왕건길과 둘레길 교차점)
왕건길로 이어진하늘다리

다시 길을 재촉하면 Y자 길이 나온다. 왕건길은 왼쪽 나무계단을, 둘레길은 진행 방향 그대로다. 하늘다리를 지나면 복숭아와 포도 과수원길이 이어진다.

복숭아 나무와 미들레

제철이 아니라 복숭아 맛은 볼 수 없지만 파릇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민들레와 개망초의 눈웃음에 충분히 행복하다.

검부러기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예쁜 생명이 돋을까. 봄은 자연에 본연의 모양과 향기를 찾아준다. 길가에 앉아 김춘수 시인의 ‘꽃’을 들려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뭘까. 대상을 인식하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 아닐까. 특별한 마음으로 다른 것과 구분 지어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다. 식물이나 동물은 인간만큼 인정욕구에 목말라하지 않지만 그게 뭐든 진정성 있게 대해 나쁠 건 없지 싶다.

이졍표따라 골목 끝까지
노태우전 대통령 생가&공사 중이다.

복숭아 나뭇길을 걷는 동안 과즙의 달콤함이 연상되어 입속에 자꾸 침이 고인다. 달콤함은 노태우 대통령 생가까지 이어졌다. 안내판을 따라 가니 골목 맨 끝집이다. 공사 중이라 돌담 너머에서 전체적인 집 구조만 살짝 보았다. 외양간이 전형적인 초가인 게 인상적이다.

열재 가는 길&이 길은 사유지 왼쪽 좁을 길이 둘레길

탑박골 과수원길을 지나 이제 열재를 넘는다. 약간 오르막이지만 재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풍경이 수채화다. 이 재는 신라시대 영천에서 군위로 가는 교통 요충지였다. 능선재를 넘어 미대동, 다시 열재를 거쳐 기성동으로 갔고 군위로 가기 위해서는 여릿재 하나를 더 넘어야 했다. 험준한 재를 넘어 다니다 보면 갖가지 이야기가 마을마다 넘쳐났다. 도깨비불이며 여우에 홀려 밤새 가시밭길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동네마다 있었다.

풍경이 아름다운 열재

이곳도 산세가 험난했다. 여우나 늑대 같은 산짐승의 공격은 물론 산적까지 출몰했다. 산짐승과 산적에게 해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자 마을사람들은 재를 넘을 때 열 명 이상 모여 다녔다. 그래서 재 이름이 열재라 했고 열 사람이 지나다닐 만큼 길이 넓어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노 대통령도 이곳 재를 넘어 공산초등학교에 다녔다.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고 산짐승의 공격을 피하고자 솔잎 묶음이나 관솔에 불을 붙여 빙빙 돌려가며 재를 넘었단다. 고개를 넘으면 허기진 손자를 위해 할머니가 주전자에 밥아 말아 주셨다고 한다.

왕건길&신숭겸 유적지&덕곡삼거리

언덕바지에 도착하면 왕건길과 다시 만나진다. 왼쪽으로 가면 구름다리, 직진은 신숭겸 유적지이다. 알다시피 팔공산은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공산전투로 유명하다. 견훤이 신라를 공격해 경애왕을 자결케 하자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팔공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견훤의 계략에 휘말려 크게 패하면서 목숨마저 위험한 지경에 놓였다.

신숭겸유적지& 뒤로 왕산이 보이고 홍살문과 기마상

위기에 빠진 왕건을 구하고자 김락, 전이갑 등과 함께 신숭겸이 나섰다. 그는 왕건과 옷을 바꿔 입고 왕건인 척 군사를 진두지휘하며 후백제군을 유인했다. 신숭겸의 지략으로 왕건은 목숨을 구했지만 고려군의 피해가 너무 커 더는 항거하지 못하고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진 자리가 동화사와 파계사로 올라가는 갈림길인 파군제 삼거리이다. 그곳에 갑옷을 입고 왼손에 칼을 잡고 선 신숭겸의 동상이 있다.

파군제 삼거리 신숭겸장군 동상
충렬문 뒤로 왕산이 보인다

왕건은 지묘동인 이곳 유적지 뒷산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 후에 사람들은 왕의 목숨을 건진 산이라 하여 왕산이라 불렀다.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관람이 불가했다. 그나마 개방된 쪽문이 있어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유적지 내 400백 년 된 팽나무(왕건나무라 함)

400년 된 커다란 팽나무가 먼저 눈에 띄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심어서 왕건나무로 불린다.

유적지 내 표충단

충렬문 맞은편 담장 아래에는 신숭겸의 피 묻은 무장복장과 순절 당시 주변의 흙을 모아 만든 표충단이 있다. 배롱나무 세 그루가 신하처럼 둘러섰다.

팽나무 옆 나무의자에 잠시 앉았다. 1천여 년 전 왕건은 참수된 신숭겸의 시신을 보며 크게 슬퍼했고 그의 충절에 깊이 애도하며 후백제군이 자신인 줄 알고 베어 간 머리 대신 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끼워 넣은 뒤 춘천(광해주)에서 예를 갖춰 장례를 치러주었다. 또한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 지묘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하지만 지묘사는 고려가 멸망하면서 폐사됐다. 후에 후손인 유영순이 옛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와 충렬비를 세웠다.

춘천에 있는 신숭겸의 묘 비석에는 「고려태사장절공신숭겸허묘」 라 새겨 있다고 한다. 묘역에 봉분이 세 개인 것은 도굴 방지를 위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전해지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은 시신은 찾았지만 목을 찾지 못한 까닭에 그리했다고도 한다.

대구시는 1981년 고려 개국공신이 순절한 이곳을 기념물 제1호로 지정했다. 시민들에겐 휴식 공간, 학생들에겐 교육의 장이며 음악회나 각종 문화행사도 열리는 곳이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지금은 모든 게 일시 정지 상태이다.

이정표 따라
덕곡삼거리 전원주택

다시 둘레길로 돌아와 열재에서 덕곡 삼거리로 이어지는 산허리 쉼터에서 잠시 쉰다. 끊임없이 움직이다 한 번씩 역동성에서 내려서면 물속에 부유하는 기분이다. 하늘을 잡아당길 듯 길게 팔을 뻗었다가 일어섰다.

파계골을 중심으로 주능선이 기품있게 펼쳐져

눈앞에 파계골을 중심으로 팔공산 주능선이 기품 있게 펼쳐졌다. 산자락 아래 마을 풍경이 안온하다.

열재에서 덕곡삼거리 가는 오솔길
울퉁불퉁 돌길

지금부터 덕곡 삼거리까지는 사유지를 에둘러 가는 돌길만 빼면 고르고 판판하다. 다행히 돌길은 나쁜 기억처럼 금방 끝났고 매력적인 오솔길은 끝까지 여행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글·사진 임수진 수필가
 

쉼터에서 내려다 본 용진마을
용진마을에 꽃이 피다

◇주변에 가 볼 만한 곳
△대한민국 13대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용진길 172)= 살아 있는 역사교육 현장으로 이용, 문화해설사 : 053-984-6407
△신숭겸 장군 유적지 (신숭겸길17) = 개방시간 : AM 10시~PM 5시(무료), 문화해설사 : 053-981-6407, 신숭겸 장군은 평산 신 씨의 시조로 유적지는 문중에서 관리·운영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는 사전 문의 필수

글·사진 임수진 수필가
글·사진 임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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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 수필가
온라인뉴스팀 kb@kyongbuk.com

인터넷경북일보 속보 담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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