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유권자의 표로 승부를 가리는 선거에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선거전이 치열해도 진심으로 “지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혹시 그럴 각오로 선거에 나온 후보가 있다면 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 선거의 본질, 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번 선거는 20대 국회의 극단적인 무능과 부패 때문에 전례 없이 서글픈 행사가 되고 말았다. 공약과 정책의 경쟁은 찾아볼 수 없고 꼼수와 술수, 궤변과 속임수가 판치고 있다. 진영논리가 전체 선거판을 감싸서 “주사파 정권” “한일전” “주적” 같은 단어들이 인터넷 댓글 창을 넘어 언론과 방송에서 울려 퍼진다. 이런 말들은 상대편이 죽어도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섬뜩하다. 선거에서 전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경쟁하는 정당들이나 지지자들이 진짜 서로를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쟁의 언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는 것이 이 땅의 민주주의에 큰 해악이 된다. 설사 좋은 세상의 모습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고,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 상대편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서로 죽이는 전쟁의 언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적어도 선거에 함께 참여했다면, 상대를 죽여야 할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 보고, 민주주의의 기본 틀과 규칙에 동의하며 결과에도 승복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선거에서 전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모르거나 그 정신에 동의하지 않는 셈이다. 이는 진영을 떠나 유권자들이 판단해야 할 중요한 기준이 된다. 민주주의를 모르거나 거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국민의 대표를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후보들뿐 아니라 지지자와 유권자들 중에도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호전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나 그런 말로 표현하는 내용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투표에 임하는 것은 자아분열적이고 모순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는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적을 공격해야 하지만, 선거는 전쟁이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이 간절해도 투표를 하면서 실제로 죽음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그 절박함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선거는 전쟁과 달리 억지로 참여하지 않는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죽는 사람도 많아지고 그 가족의 고통도 커지지만,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권력으로 갑질하는 자들, 민주주의를 망치는 자들이 설 곳이 없어진다. 전쟁에 나가는 자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투표하러 가는 사람은 잠시 줄만 서 있으면 된다. 그 작은 희생을 감수하고 투표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바로 좋은 사회다.

전쟁은 승자마저 파괴와 상실의 고통에 빠뜨리는 반면, 선거는 패자에게도 교훈을 주는 긍정적인 도구다. 선거의 결과와 무관하게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내 이웃의 생각을 알게 되고, 후보자와 정당은 선거를 통해 시민들의 바램을 알게 된다. 선거의 결과에 승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알게 된 바를 참고하여 자신의 생각을 다시 살피고 다음엔 더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번 주, 전쟁이 아닌 선거일이 있다. 인물도 정당도 정책도 뭐 하나 신통한 것이 없지만 기본적인 방향과 기준은 분명하다. 선거와 전쟁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 전쟁을 그리워하는 자, 선거의 상대를 전쟁의 적으로 규정하는 자들을 빼고 나면 우리의 결정이 선명해지고, 우리나라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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