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DC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원이다. 도시계획을 국제 공모, 프랑스 공병 소령 출신 랑팡의 설계에 의해 건설된 계획도시다. 워싱턴에는 국회의사당 보다 높은 건물은 못 짓게 규제한다. 국회의사당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가장 존중되고 높임을 받아야 한다는 미국민의 정서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가 있다. ‘워싱턴 기념탑’이다. 미국의 모든 주로부터 가져온 석재로 쌓아 올린 이 탑은 워싱턴DC의 중심이며 심장이다. 미국민이 워싱턴을 얼마나 존경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워싱턴기념탑을 중심으로 서쪽에 제프슨기념관, 남쪽엔 링컨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워싱턴이 국민으로부터 이토록 존경받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 정치의 기초를 확립한 위업 때문이다.

워싱턴은 대통령이란 당파를 초월해야 하며,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는 어디서나 구해 채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남북지역 정서를 토대로 한 파당정치가 활개 쳤는데 워싱턴은 학연, 지연을 고려하지 않고 고르게 인재를 등용, 격심한 파당정치의 악습을 극복해 나갔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연방정부는 지역과 출신 성분을 막론하고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철석같은 믿음이 미국 번영의 초석이 됐다. 워싱턴은 자신의 능력에 정직했다. 초기 미국이 필요했던 것은 그의 상징적 대표성이었지 그 이상이 아니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절대왕권 시대의 시대적 대세를 거스르며 삼권분립의 원칙하에 새로운 정치를 시험에 올린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소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워싱턴은 1796년 3선에 출마, 3선 대통령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 “도덕성은 대중정치의 원천이다”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워싱턴이 남긴 당부다. 외침을 물리쳤지만 전쟁이 끝나자 지휘권을 버리고 표표히 농장으로 돌아간 로마의 집정관 킨키나투스를 연상시켜 워싱턴은 ‘미국의 킨키나투스’로 불려 지고 있다.

정의와 공정, 법치와 도덕성을 무너뜨려 ‘하등 민주주의’로 전락시킨 세력을 심판할 기회는 내일 뿐이다. 국민이 개, 돼지가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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