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좋아
영혼의 내장까지 환히 비춰질 거 같네
거기 전생을 밟고 온
징검돌에 이끼가 파르라니 돋아서
이젠 머리를 괴고
낮잠을 다독이는 석침(石枕)으로 쓰려는데
봄볕이 좋아
꾀꼬리 소리가 맴도네
슬픔까지는 너무 처지고
웃음까지는 너무 날래서
그냥 한 꾸러미 명랑이 날개를 달았다 싶네
그것도 샛노란 판본(板本)을 하고
나온 저 허공의 생색(生色)이러니
겨우내
군동내 나는 허공이 엉덩이로 지긋이 뭉개고
주니가 든 앙가슴으로 얼러 내놓은
샛노란 명랑이려니 싶네
봄볕이 좋아


<감상> 봄볕에는 식곤증이 배여 있어 한숨 자려는데 꾀꼬리 소리가 들려오네. 32가지의 소리를 굴리는 꾀꼬리는 전생의 징검돌을 건너와서 우리에게 소리를 보여주네. 웃음과 울음을 넘어서 그냥 한 꾸러미 명랑의 날개를 펼치고 왔네. 그 소리가 노랑을 불러오고 허공에다 색을 칠해 놓은 것 같네. 군내 나는 냄새까지 몰고 온 건 생명을 깨우기 위함이고, 겨우내 지루한 싫증을 날래기 위함이네. 슬픔과 기쁨도 내려놓고 샛노란 명랑과 놀고 싶은 봄날은 왔으나, 사랑하는 그대는 오지를 않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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