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한국 보수 정치의 맥을 이어 온 미래통합당의 총선 참패에 대한 정치학자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평가다. 지난 70여 년 헌정사상 영남권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보수 정당은 굴곡과 부침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정치의 중심에 이었다. 보수 정당은 변화하는 국가 질서 속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평형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최후의 일격을 당했다.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민심이 여당의 압도적 승리를 몰아주었다. 국회 전체 의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의 공룡여당을 탄생하게 했다. 미래통합당과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은 개헌저지선인 100석 보다 3석 많은 103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보수 정당은 이제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의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됐다. 행정부와 사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정부의 손에 들어가 삼권분립 의미마저 상실될 처지에 놓였다.

보수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한 원인은 수도권의 중도층 이반과 코로나19 등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새로운 비전이나 자기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무감각 때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의 주류가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세대교체가 된 상황인식이 결여된 결과다. 이제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개발 세대가 정치 주도권을 후 세대에게 이양하는 단계로 봐야 한다.

보수를 자처한 미래통합당은 지난해 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국면에서부터 코로나19 사태까지 20대 국회 내내 지나치게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경제개혁이나 사법개혁이나 대안보다 투쟁 일변도의 대응이 중도층을 돌아서게 했다. 정책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투쟁을 앞세운 품격 잃은 보수로 전락한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을 기치로 한 문제인 정부의 경제 정책이나 국제 질서의 흐름과 상충하는 외교정책, 국가 역량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탈원전 에너지 전환정책, 라임 사태 등 심각한 경제범죄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비판하거나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제 여당은 사법개혁, 대북정책, 탈원전 등 이른바 개혁법안이라 이름 붙인 안건들을 야당의 협조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국회의장은 물론 국무총리, 대법관 등 국회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인사도 청와대 뜻대로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야당 권력의 상실은 견제 기능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번 총선에서 경북과 대구는 경북 13석, 대구 11석을 통합당에 몰아줬다. 대구 수성을 홍준표 당선자도 보수의 대표 인사여서 경북과 대구가 ‘보수 텃밭’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경북·대구(TK) 지역 당선자들이 통합당의 중심 세력이 됐다. 그만큼 TK 정치권이 보수 혁신과 재건에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TK 출신 당선자들은 보수의 종주(宗主)역할을 해 온 정치세력으로서의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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