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환 변호사
금태환 변호사

아들이 서너 살 때 일이다. 아들이 목욕탕에 가길 원했는데 집 근처 목욕탕이 놀아서 아들과 함께 좀 더 멀리 있는 목욕탕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거기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가 그 근처에 있는 목욕탕을 찾아보려 하다가 “그만 집에 갈래”라고 아들에게 물으니 바로 좋다는 것이었다. 순간 조금 더 고집을 부려 더 찾아보자고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버지가 가지 말자고 하니 거역하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더 관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고 약간의 실망도 일었다.

고집이란 자기의 생각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소신이 있다 라는 것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필자는 가끔 고집 세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고집 세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학교 있을 때 후배 교수를 보고서이었는데 이 친구는 자기의 생각이 없는 듯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었다. 타인의 면전에서는 절대 타인과 반대되는 얘기를 꺼내지 않지만 어쩌다 꺼내더라도 아주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교수들이나 학생이 모두 좋아하는 인기교수인 것이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 교수는 줏대없는 흐물흐물한 호인이었다.

과연 고집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우선 자기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최강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시한다. 정보의 양을 확대하지 않는다. 자기 범위의 정보에 만족하여 버린다. 거쳐야 할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한다. 참을성의 부족이다. 충분히 기다려 보지 않는다.

요즈음 다시금 세상에는 고집 센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정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어떻게라도 펴보려 탈당해서 다시금 출마하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렸을까.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더러는 성공하여 그것도 나무라지는 못하겠다.

또 다른 사람의 중대사인데 함부로 고집만으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조마조마하였다. 많은 선거비용 하며, 괜히 엉뚱한 사람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큰 뜻을 품었다고 한다. 하기야 큰 뜻을 품었는데 자그마한 선거비용쯤이야 어떠하랴.

사람이 뜻을 세우고 그것을 관철하려 죽을 힘을 다해 보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고집으로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도 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릎 쓰고 한길을 파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무리한 고집을 피우다가 패가망신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많은 사람이 멈추라는 순간에 멈추어야 하는가. 그것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될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일신전속적인 결정이고 결국은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온 정신을 쏟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자신과 주위의 사정을 종합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린 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언제 멈추어야 하는가. 그 순간을 알지 못하고 누구는 이리하고 누구는 저리 하니 그것이 인생의 어려움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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