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담아 치밀하게 천 위에 옮긴 한국미술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오스트리아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초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 만의 전통 자수법에 입체감과 생명감을 불어넣어 예술로 승화시킨 것을 혼자수라 합니다”

경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봉황대 옆 경주시국제교류전시관에는 지난 2014년부터 경주혼자수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혼자수 작품 전시관과 체험관을 갖추고 있는 이곳에는 서울이나 부산, 대구, 포항, 울산 등지에서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입장료만으로는 경주시청에 납부해야 하는 임대료도 내기 힘들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동안 뜻있는 분들과 혼자수에 감동 받은 사람들의 후원이 있어서 겨우 유지를 하고 작품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3월 초 혼자수미술관이 위치한 지역이 문화재보존구역이라 헐리게 되면서 미술관은 사라졌다.

경주혼자수미술관 대표 작가인 이용주 작가는 “잠시 날개를 접고 더 먼 길, 더 높은 곳을 날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며 경주에 남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경주에 새로운 미술관을 마련할 능력이 없어 고민이다.

경주에서 혼자수로 고도 경주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리를 잡았지만 6년여 만에 날개를 접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보를 남기는 작업인 혼자수는 경주에 있어야 한다”고 늘 주장하고 있는 이용주 작가의 작품세계와 혼자수의 매력을 살펴본다.

가수 셀린디온이 혼자수 작품을보고 감탄하고 있다.
△온전한 우리의 예술 ‘혼자수’.

혼자수는 비단실을 매체로 한 현대미술로, 지난 2004년 이용주 작가가 ‘사실감나는손자수법’을 만들어 작업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적 색감으로 비단실을 염색해 사실감나는 손자수법으로 혼을 담아 수를 놓는다고 혼자수라 한다.

비단실 고유의 광택과 수의 방향이 빛을 만나 만들어내는 홀로그램 현상으로 작품을 보는 위치마다 다른 빛반사로 마치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비단실을 바늘에 꿰어 비단 천에 찔러 점을 만들고, 점을 모아 선을 만든다.

그 선을 모아 면을 만들고, 면을 모아 공간을 만들며 작품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서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치밀하게 계획해 천 위에 밑 본을 잡고, 꼰사, 푼사, 반푼사 실을 고르고, 실의 굵기를 정해 염색해 사용한다.

실의 꼬임과 수를 놓는 각도, 중첩을 실행한다.

작가의 이는 3개를 빼놓고 모두 임플란트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큰 작품을 하나 마치면 이가 하나 빠진다.

그는 작품 속에 열과 성, 혼을 담는 ‘혼자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4명의 전현직 대통령과 경제, 예술, 종교계를 이끄는 리더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그들이 초대해 전시회를 열어주는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유일한 한국미술이 됐다.

작품 불국사의 가을.
△그림을 그리다.

이용주 작가는 실크실을 바늘에 꿰어 수놓아 그림을 그린다.

기어 다니는 누에가 날기 위해 지은 고치를 풀어 인간에게 준 실크. 신은 이를 축복해 우아한 빛과 긴 수명을 줬다.

실크 실의 단면적은 둥근 삼각형으로 프리즘처럼 빛을 산란해 형형색색의 빛을 만들었다.

실크는 단백질로 수명이 길어 8500년 전의 실크가 중국 허난성에서 발견됐다.

한반도의 평양과 중국 마황태한묘에서 발견된 실크 옷을 장식한 실크 자수는 2000년이 지났는데도 색이 선명하고 환상적인 광택을 가지고 있다.

작가 이용주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실크 실로 오랜 시간 동안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완성한다. 노동집약적 작업과 지극한 정성로 만들어낸 점, 선, 공간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실크 실로 중첩 자수해 입체감을 만들고, 실의 꼬임과 자수를 하는 방향을 조절해 빛을 분산시킨다.

그래서 관람자 눈의 위치와 빛에 따라 변하는 상을 표현할 수가 있다.

△인간을 그리다.

초상화는 그 사람의 모습은 물론 내면과 성격, 삶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이용주 작가는 가는 실로 정교하게 수놓아 머리카락과 수염과 눈썹을 한 올 한 올 실제처럼 표현한다.

옷감의 조직처럼 정교하게 자수를 해서 만져서 질감이 느껴지게 한다.

빛을 작품에 담아 실제 사람을 보는 듯 위치마다 안색과 머리카락, 옷의 빛들이 변하게 만든다. 마치 살아있는 인물을 보는 것 같다.

어두운 부분, 숨겨진 부분도 다른 각도에서는 보여준다.

또한 이용주는 이 초상들의 모임, 군중을 시리즈로 작업하고 있다.

한국 서울과 경주만이 아닌 이탈리아 피렌체, 터키 이스탄불, 일본 동경과 오사카 등 외국인 군중들까지 작품으로 표현한다.

군중은 작품의 소재인 비단 실이 천과 만나듯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 시대를 표현한 풍속화이다. 정밀하게 작업한 개인 초상화를 모은 집단 초상화이기도 하다.

작품 삼릉 가을안개.
△자연을 그리다.

이용주의 풍경화는 자연을 천 위에 옮긴 것이다.

천에 실을 겹쳐 수놓아 부조를 만든다. 이렇게 하면 풍경화 속 나무 줄기, 바위, 앞쪽의 나뭇잎, 풀잎, 소나무 껍질을 입체감이 느껴진다.

물론 빛의 분산을 고려해서 실의 굵기와 방향을 결정해 수를 놓는다.

풍경화의 거장 컨스터블이 표현하려 했던 정밀함. 인상파의 거장 모네가 시리즈로 여러 장의 작품으로 변화하는 빛을 그렸다.

루앙대성당 시리즈는 새벽부터 한낮까지 변하는 빛을 40여 점 작품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용주는 정밀함과 새벽부터 한낮까지의 변화하는 빛을 단 1작품에 표현한다.

움직이며 보면 마치 보는 이가 풍경 속에 들어온 듯 원경과 근경의 변화한다.

프라시도 도밍고 초상.
△명화를 그리다.

작가 이용주는 거장들이 재료의 한계로 표현 못 한 가려진 빛, 변하는 빛을 표현한다.

한국에 단 1점도 없는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세계명화를 학생들에게 보여 주려고 작업한다. 이 작품들로 공간과 색, 거장의 작품을 빛으로 재해석하고, 상상을 구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또 한 점의 명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재해석한 명화들은 원작가들이 표현 못 한 빛들을 표현한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구스타프 클림트의 원작이 왔던 2009년 1월 서울 예술의 전당 전시 때 10점을 VIP ROOM에서 특별 전시했고, 극찬을 받았다.
이용주 작가(오른쪽서 두번째)가 2019년 5월 혼자수미술관을 방문한 오스트리아 하인츠피셔 전 대통령 내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년 5월 오스트리아의 하인츠피셔 전 대통령과 비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한 영부인이 혼자수미술관을 방문해 극찬했고, 새로운 클림트의 작품을 비엔나에서 전시에 초대했다.

이것은 이용주 작가의 명화 작업이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 받은 것이다.

그가 24년이 넘도록 약 20명의 어시스트들을 데리고 한국적 색상과 방법으로 재창현한 교과서에 나오는 200여 점 세계명화와 시리즈작품 등 3500여 편을 전시할 작품들은 신자본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교과서에 나오는 세계명화 400여 점을 전부 작업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황기환 기자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