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하늘(天)’이라는 말만큼 다양한 내포를 지닌 말도 없습니다. 절대적인 것, 신성한 것, 원리원칙적인 것, 부성(父性), 부권(夫權)적인 것 등의 표상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노자, 공자, 맹자, 주자 같은 큰 스승들의 말씀에서도 천(天)이나 천도(天道)라는 말이 자주 사용됩니다. 민초들의 서사(敍事)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시아 각 민족들의 신화나 기원설화에서 천신족(天神族)은 매우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우리 단군신화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신족의 지배를 받아온 민족이라는 게 단군신화의 핵심요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땅의 대표인 웅녀와 결혼해서 단군할아버지를 낳았으니 우리민족은 천신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특별한 땅 사람들입니다. 환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그리고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하늘에서 내려올 때 지상에도 다수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지상족과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족들이 사이좋게 살아온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천신족의 피가 많이 퍼졌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현재 우리 인구의 절반쯤은 천신족의 혈통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물론, ‘느낌적 느낌’, 농담일 뿐입니다.

일전에 주역에서 즐겨 쓰는 말이 ‘이섭대천(利涉大川), 큰 내를 건너면 이롭다’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주역에는 ‘밀운불우(密雲不雨)’라는 말도 자주 나옵니다. ‘구름이 빽빽할 뿐 아직 비가 오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 성사되기 직전이라는 뜻과 어둡고 막히고 굽은 상태가 지속된다는 뜻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살다 보면 밀운불우의 시기가 닥칩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모든 일이 선후가 분명한데 막히는 상황이 오면 매사 원인도 불투명하고 결과도 시원스럽지 못합니다. 땅과 하늘, 아래 위가 통하지 못하여 찌는 듯 사람만 괴롭게 하고 정작 시원한 비는 오지 않습니다. 한여름, ‘밀운불우(密雲不雨)’처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숨 막히게 습도는 높고 날은 더워 그야말로 진땀이 나게 합니다. 정치에 빗대자면 공경대부들은 무사한데 (그들의 무사안일로 인해) 백성들만 죽어 나가는 형국입니다. 상하가 불통(不通)이어서 매사 어둡고 막히고 굽은 상태입니다.

...상육(上六)은 만나지 아니하여 지나치니, 나는 새가 떠남이라. 흉하니 재앙이라(上六 弗遇過之 飛鳥離之凶 是謂災?). -- 소인의 지나침이 드디어 상극에 이르렀으니 지나쳐도 한계를 알지 못하고 너무 지나친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너무 지나쳤으니 무엇을 만나리오? 날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무엇에 의탁하리오?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 것이니 다시 무엇을 말하리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470쪽]

뇌산소과(雷山小過)입니다. 4.15 총선이 끝나고 영남 고립의 새로운 정치 지형이 생성되는 것을 보며 소과(小過)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작은 것이 지나치니 큰 것을 놓치는 형국입니다. ‘비조이지(飛鳥離之), 나는 새가 떠나고 홀로 백성들만 숨 막히게 되는’ 밀운불우의 시절이 오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큰 걱정은 아닙니다. 밀운불우 다음에는 반드시 시원한 비가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군신화에 의지해도 우리는 천신족의 후예이니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늘 날아간 새들이 돌아왔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은 끝까지 버리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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