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포탄 속 참상의 현장 '생생'…찰나의 감정 담아내 천재성 증명

손일봉
손일봉

영남지역 미술자료 발굴에 힘을 쏟았던 ‘영남의 구상미술전’을 추진하면서 참으로 귀중한 우리지역 전쟁기록화를 발굴하게 되었다. 경주 출신 화가 손일봉의 유족(딸, 손도자)의 자택을 방문하면서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형산강 전투’라는 작품이다. 6·25 전쟁은 한국미술사에서는 공백기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손일봉의 ‘형산강 전투’라는 작품은 한국미술사에 사적(史的) 가치가 매우 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형산강 전투’는 모 기업체에서 소장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작품이었다. 유족인 손도자는 고이 간직하다가 ‘영남의 구상미술전’에 작품을 내놓으면서,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형산강이 포항에 위치해 있으므로 포항시립미술관에 소장케 하셨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우리지역에 간직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지역 미술사를 두텁게 해주는 역할과 함께 전국적으로 자랑할 거리가 생겨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손일봉(1907~1985)은 경주 출생으로 1934 동경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했다. 1925년 선전 입선과 수차례 특선을 수상했고, 1928년 일본 제전에도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 1948년 경주 예술학교 초대교장과 1971년까지 대구경북 중등교사와 교장에 역임했고, 1950년 6·25전쟁시 종군화가로 활동했다. 1971부터 1974년까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79년 한유회를 창립하여 영남지역 미술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손일봉의 작품의 특징은 인물이나 정물, 풍경 등 구체적인 대상물을 선택하여 그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묘사의 범위를 최대한 축약시켜 큰 붓으로 빠르게 작업하는 데에 있다.
 

손일봉 작 형산강 전투

손일봉의 작품 ‘형산강 전투’에 관한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가 쓴 글이다. 「손일봉의 ‘형산강 전투’는 전쟁 소재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그림은 재생지에 수채 물감으로 그린 것으로 내용은 폭탄이 작열하는 가운데 강을 건너는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종군 화가단의 활동 등이 없지 않았으나 6·25전쟁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의 숫자는 매우 희귀한 실정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중략) “이번 포항시립미술관 주최 ‘영남의 구상미술’ 전시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듯, 영남 구상회화의 활발한 전개 양상은 한국 근대미술사를 보다 풍요롭게 꾸며주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라고 평했다.

병사.

‘형산강 전투’ 작품은 1950년,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6·25 전쟁터의 현장에서, 종군화가였던 손일봉 이 본인 목숨 또한 어찌 될 수 있는 어렵고 극박한 환경에서, 전쟁의 광경을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국가애가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종이를 구하지 못해 군 막사에서 사용했던 누런 재생지를 구해 그린 그림이라 그 때의 상황을 잘 말해 준다. 뗏목으로 병사들을 실어 나르는 과정 속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총알과 포탄이 투하하는 광경, 하늘에는 많은 폭격기들이 굉음을 울리며 날아다니는 현장을 실감 있게 그린 작품은 작가의 능숙하고 뛰어난 그림 실력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작품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병사

‘형산강 전투’는 종군화가로서 생생한 현장을 사진처럼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에 손일봉의 예리한 감각과 순간적인 관찰력의 우수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찰나의 순간에 구도와 색감, 무엇보다도 현장감이 압도적으로 우수한 면에서 손일봉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전쟁터의 현장을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긋한 마음으로 그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전쟁터의 리얼한 현장감이 탁월하다. 1950년 9월 5일~9월 18일에 이뤄진 포항 형산강 전투는 강물이 핏물이 됐다고 표현할 만큼 치열했다. 국군 최후의 방어선인 형산강을 지킴으로써 우리 군은 형산강을 도하하여 포항을 탈환한 것은 물론 북진 추격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종군화가 손일봉이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그린 ‘형산강 전투’의 작품에서 그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형산강에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민족끼리의 참상의 현장을 어떠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을까? 뗏목 위의 병사들의 다양한 포즈에서 생(生)과 사(死)를 넘나드는 찰나의 감정과 표정들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가 있고 아울러 작가의 복잡한 심리를 엿볼 수가 있다.

병사.

손일봉은 참 부지런했다고 했다. 그의 제자들과 유족들에 의하면 틈만 나면 스케치를 했고 사물의 관찰을 위해 일상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말한다. 그는 전쟁 중에도 항상 주머니에 작은 스케치북과 드로잉 재료를 갖고 다녔고, 전쟁터에서의 일상적인 모습과 생각들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병사시리즈’의 드로잉 작품은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모습과 일상들을 틈틈이 관찰하면서 그린 크로키 작품으로 소소한 병사들의 모습은 작가의 인간애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전쟁터에서 만난 병사들이지만 가족과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작가의 심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병사

‘형산강 전투’와 ‘병사시리즈’ 작품이 아니었더라면 손일봉과 우리 지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작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산강 전투’ 작품은 손일봉과의 인연과 더불어 인문학 스토리가 마련되는 교두보 역할을 해 준 셈이다. 또한 그가 우리지역에 문화유산을 남기게 해 주었던 대화가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차세대들에게 전쟁의 참화를 알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세월은 흘러가고 또 흘러서 전쟁의 역사는 기록으로만 남겨지고 무감각해질 것이다. 불과 70년 밖에 안 된 6·25 전쟁을 글로벌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무거운 내용으로만 역사적인 면들을 일방적으로 알리기보다는 이제는 문화적인 접근으로 전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몰학도충혼탑’, ‘포항지구전적비’, ‘형산강 전투’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인 측면들을 전승기념관에 전시 코너를 마련한다면 지역 시민들은 물론 국내·외에서 오는 관람인들에게 문화예술 차원에서 역사적인 내용을 새롭게 보는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아울러 우리지역이 문화 도시로서의 이미지와 함께 스토리텔링화 될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서도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경숙 큐레이터, 화가
박경숙 큐레이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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