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용맹이 만용(蠻勇)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전후 사정은 살피지 않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황당한 짓이 만용이다. 역사에는 자신의 힘만 믿고 상대를 깔본 만용 때문에 자멸한 사례가 수없이 나온다.

16세기 스페인은 유럽 최강국이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으로 대박을 터뜨린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보유,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당대의 ‘G1 국가’였다.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지중해의 많은 섬을 차지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2세는 영국까지 넘봤다. 유럽의 패자(覇者)로서의 펠리페2세의 자신감은 점점 만용으로 변해갔다.

영국까지 지배할 목적으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1세에게 청혼했다. 엘리자베스1세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하자 분기탱천한 펠리페2세는 즉각 무적함대에 영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력상 영국 해군은 스페인 해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80척 군함을 보유한 영국은 127척의 무적함대에 비해 수적으로도 열세였다. 전투 경험으로도 스페인이 한 수 위였다.

영국을 얕잡아 본 스페인은 승리를 확신했지만 영국 해군은 겉으로 보기보다는 훨씬 강력한 군사력으로 무장돼 있었다. 우선 군사들의 정신력이 유럽의 최강이었다. 치밀한 전략도 없이 섣불리 선제공격을 감행할 무적함대는 영국 해군에 박살이 났다. 겨우 54척만 남은 배를 이끌고 스페인으로 도망쳤다.

만용의 대가는 가혹했다. 이 전쟁으로 스페인의 전승기는 막을 내렸다. 대신 영국이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섰다. 무작정 자신감이 넘치고 용맹하다 해서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만사는 복잡미묘해 분별없이 날뛰다간 큰 코 다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시인 조항록은 자신의 책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11가지 가치’에서 말했다. “분별없이 날뛰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없다. 순간의 달콤함은 맛볼지 모르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무리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 피눈물을 삼키기 마련이다” 권력이 판치는 정치판에서는 권력만 믿고 날뛰다 피눈물을 쏟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겠다”며 기고만장, 여권 당선자들의 만용이 도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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