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2020년 5월 30일 제21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국회의원으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의정활동 청사진을 짜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기가 시작되면 이러한 다짐은 사라지고 정치꾼과 편 가르기 사이에서 줄을 탄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국민이 이렇게 길들여 놓았다. 선거가 끝나면 이들이 내세웠던 공약을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는 긍정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정당과 후보자는 부정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을 높게 평가하고 그렇지 않은 정치인은 사정없이 내치는 냉정한 판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공약(公約)은 여러 사람에게 한 약속이다. 여러 사람을 좁게 보면 지역구 주민이고 넓게 보면 국민이 된다. 따라서 정치인은 이행 가능한 약속을 해야 하고, 국민은 이러한 약속을 분석하여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해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표를 많이 얻기 위해 공약(空約)을 막 내질러 버린다. 이념적으로 양분된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에게 환호를 보낸다. 선택을 망설이는 국민은 더 환상적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자를 선택한다. 후보자는 국민을 속여 대표자로 선출되고, 국민은 정치인의 편 가르기와 후보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가짜 대표자를 선택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선거 과정의 현주소다.

공약이행 수준을 보면 이러한 상황이 증명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연구결과를 보면 제20대 국회의원의 공약이행 비율은 46.8%이다.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49.75%, 자유한국당 47.68%, 대안신당 41.26, 바른미래당 25.81%, 무소속 26.40%, 정의당 29.55%이다. 선거 때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능력 밖의 약속을 했거나, 아니면 임기 동안 허송세월하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제21대 총선에서 후보자나 정당 모두 공약 불이행에 대해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당은 20대 국회의원 중 71%, 통합당은 57%를 재공천했다. 국민을 정당과 정치인의 하부조직쯤으로 여긴다는 판단 이외 다른 이유가 있을까?

자기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자의 공약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선거에서 저마다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므로, 표심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는 자신의 지역구 국민 전체의 대표자가 되며, 이들 모두의 이익을 대변할 의무를 지게 된다. 당선자는 낙선자의 공약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실현 불가능한 공약은 제외된다. 이념과 노선을 지나치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낙선자를 지지한 표의 본질을 파악하여 적절한 조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선거의 본질에 부합되는 국민의 대표자는 이렇게 탄생한다. 당선자가 자신만의 공약을 지키려 하는 행태는 부과된 의무 중 지극히 일부를 행하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선거는 종료됨으로써 마무리되는 행사가 아니다. 낙선자의 공약을 포함하여 공약 이행계획을 세우고 공약을 실제로 집행하며, 이행결과를 국민에게 보고하고 실적으로 국민에게 심판을 받는 과정이 바로 선거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정당과 정치인의 분열전략에 말려들지 않고 공약이행을 후보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척도로 삼아야 한다. 법적 정비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66조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공약 내용, 이행절차, 재원조달방안 등을 기재한 선거공약서를 유권자에게 제공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대상은 대통령과 지방선거 출마자이다. 국회의원도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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