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9월 12일 경주에서 국내 역대 최대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이날 오후 7시 44분 규모 5.1로 처음 발생한 데 이어 50여 분 뒤인 오후 8시 32분 처음보다 더 강한 규모 5.8로 커졌다. 이후 규모 2∼3의 여진이 계속 이어졌다. 아파트를 뛰쳐나온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에 떨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국가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는 물론 방송사들 중 어느 한 곳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재난보도로 전환한 곳은 없었다. KBS 1TV는 1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우리말 겨루기’를 방송한 데 이어 강진이 발생한 시각에도 일일연속극 ‘별난 가족’을 버젓이 내보냈다.

MBC TV도 오후 8시께부터 ‘뉴스데스크’를 방송했지만 9번째 뉴스로 지진 소식을 전했다. MBC는 이어서 일일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를 예정대로 내보냈다. SBS TV도 8시 뉴스에서 4번째 꼭지로 지진 소식을 짧게 전하는 등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이날 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등으로 채웠다.

지난 24일 오후 3시 39분 안동시 풍천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연 사흘 동안 병산서원 등 문화재들이 산재한 안동지역의 산을 온통 잿더미로 만들었다. 화마는 건조주의보 속 강풍을 타고 축구장 1100개 면적, 800㏊(8,000,000㎡)를 삼켰다. 지난해 4월 발생해 큰 피해를 낸 강원도 고성 산불의 임야 피해 면적이 530㏊인 것을 감안 하면 안동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이런데도 고성 산불 때와 다르게 산불이 발생한 내내 방송사들은 재난방송을 편성해 내보내지 않았다. 온통 생사를 알 수 없는 북한 김정은의 안부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관련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전국지 신문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27일자 사회면에 한 장의 사진물로 처리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도 속지에 사진 딸린 기사로 처리했을 뿐이다. 그나마 한국경제가 정재숙 문화재청장의 유네스코 유산 병산서원의 안부를 묻는 칼럼을 실은 것이 위안이었다. 서울의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가 ‘서울 로컬’ 언론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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