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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26. 이진우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 마늘 명인
[명인] 26. 이진우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 마늘 명인
  • 이만식 기자
  • 승인 2020년 05월 03일 21시 17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5월 04일 월요일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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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기술 혁신 명품 의성마늘로 농업시장 주름잡다
이진우 명인이 작년에 생산한 명품 의성마늘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니 교편을 잡고 계시던 큰형님께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의성군 봉양면이 고향인 저는 아직 결혼 전이었지만 그 뜻을 따라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한길만 걸어온 명인의 말투는 고즈넉한 들판처럼 순박하고 담백했으나, 그의 이력은 그 이면에 담긴 성실하고 에너지 넘친 삶을 고스란히 말해주었다.

이진우(71) 마늘 명인은 50여 년의 영농경력을 가진 그야말로 베테랑 농업인이다.

2014년 농진청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 명인’으로 선정된 명인은 2008년 ‘의성 마늘 명인’ 인증과 2011년 ‘경북농업명장’ 인증을 받았으며, 이후 2015년 농업중앙회로부터 ‘명인·명작’ 인증패까지 받으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명인임을 입증했다.

15개가 넘는 수상 실적도 그 오랜 기간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의성 마늘에 쏟아 부었는지 증명해 주지만, 그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지역사회와 지역의 농업발전에 헌신한 이력으로 지역을 위한 그 진정성이 절로 느껴진다.

1973년 큰형님의 권유로 부모님의 농사를 물려받아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진우 명인은 그간 의성 마늘의 명성에 맞는 신기술의 개발과 보급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헌신해 왔다.

2014년 농진청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 명인’에 선정
△‘의성 마늘‘명품화와 더불어 지역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마늘 주아재배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마늘 주아재배 선도실천과 인근 농가 확대보급으로 소득증대를 이끌어 냈다.

마늘은 경영비의 70% 이상이 종구비로 다른 작물에 비해 생산비가 많이 들고, 품종개량이 어렵고, 매년 연작을 하게 되면 수량성이 떨어져 예천이나 서산, 단양 등지에서 씨 마늘을 비싼 가격을 내고 구매해 농사를 짓다 보니 생산비가 많이 드는 어려운 작물이었다.

명인은 1993년 처음으로 의성군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마늘 주아재배를 접했고, 주아재배만이 수량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받아들여 의성군에서 최초로 330㎡(100평)에 주아재배를 시작했으나 이듬해 마늘출현이 50%도 안 돼 실패를 경험했다.

그러나 이듬해 농업기술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새로운 재배기술을 도입했고, 주아재배 시 반드시 파종 후 물을 충분히 주어야 싹 출현이 높아질 수 있음을 터득하고 시범 포장을 조성해 평가회를 하면서 의성군 전역에 파급되는데 이바지했다.

또한, 1998년 농림부 시책사업(마늘경쟁력 제고사업)에 채택돼 전국의 마늘재배 농가에 주아재배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의성은 다른 지역보다 10년 먼저 주아재배를 채택할 수 있었으며, 이전에 40억 원 상당의 씨 마늘을 외부에서 구매했다면, 현재는 의성의 씨 마늘 50억 원 치가 전국으로 팔리고 있어 씨 마늘 판매를 통한 수익도 많이 늘어났다.

이진우 명인은 2014년 농진청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 명인’으로 선정된 명인은 2008년 ‘의성 마늘 명인’ 인증과 2011년 ‘경북농업명장’ 인증을 받았으며, 이후 2015년 농업중앙회로부터 ‘명인·명작’ 인증패까지 받으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명인임을 입증했다.
△저장성 향상을 위한 신기술로 의성 마늘 명품화에 이바지.

지난 2006년과 2007년, 경북농업기술원 이숙희 연구원과 연계한 마늘 수확 후 키토산 처리가 마늘 저장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연구사업과 이중환 연구원과 연계한 마늘 병해와 저장 중 병해로 부패마늘이 발생하는 원인 규명에 동참해 성과를 거두었으며, 2007년 농촌진흥청 농업기계화연구소 윤홍선 과장이 추진하는 마늘 건조와 저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참여, 마늘 수확 후 빠른 건조가 부패율 경감에 효과가 뛰어남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2007년 농업기술센터 시범사업으로 마늘 건가 시설에 비닐을 둘러치고 농업용 온풍기를 설치해 장마기에도 부패 걱정 없이 건조할 수 있는 마늘건조시스템 개발에 동참해 성공함으로써 의성군에서 추진한 마늘 신활력사업을 통해 500개소까지 확대 보급하는데 토대가 됐다.

이진우 명인은 “마늘은 재배도 중요하지만, 건조과정이 특히 중요합니다. 온풍기 바람으로 빨리 말려야 상품성도 높아지고 저장성도 좋습니다. 그냥 바람에 말려서는 서울까지 유통되어도 저장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저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마늘재배 기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경쟁력을 제고 하는 일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주아재배로 생산한 의성마늘.
명인은 수입 개방화에 대응하고 홍수처럼 범람하는 중국산 마늘에 대응해 우리나라 마늘 산업의 경쟁력은 주아재배를 통한 생산성 증대와 노동력 투하량이 가장 많은 파종 및 수확 작업의 기계화를 통한 생산비 절감에 있다는 전제하에 마늘 파종기 개발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1996년 농촌진흥청 농업기계화연구소와 연계해 경운기 부착형 4조 식 파종기 개발에 동참, 적응시험을 위한 포장을 제공했고 농업기술센터와 협조해 파종 연시 회를 유치해 이른 시일 내에 신제품이 출시되는데 공헌했다.

1998년에는 농민대표로 참석한 마늘경쟁력 제고사업으로 마늘 관련 농기계 반값 공급이 정책사업으로 채택되는데에도 공헌했다.

또한, 마늘 생력화 재배기술 개발을 통한 노동력 절감과 상품성 향상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마늘은 비닐 피복 재배 시 2월 하순∼3월 상순까지 비닐 위에서 유인작업을 하면 노동력이 많이 들고 4월 중순부터 지온이 많이 올라가 비닐 위로 충분한 복토를 하다 보니 수확 시 비닐제거가 힘들었다.

이에 기술센터에서 추진하는 2중 망 피복시험사업에 참여해 안정적 재배기술 정립에 공헌했으며 현재는 3월 중순 비닐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과 생분해비닐을 이용해 비닐제거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명인은 자신의 이런 성과가 혼자 해낸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농업기술센터와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명인은 농민사관학교를 거쳐 마늘 마이스터 대학까지 오롯이 마늘을 공부하는 데만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력이 쌓여 갔고, 농업기술센터 담당자들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의성 마늘
△끊임 없는 기술개발과 지역사회 발전 헌신.

이진우 명인은 2008∼2010년 명품 의성 마늘 가치창출을 위한 의성 마늘 소스페스티벌 축제 추진위원장을 맡아 행사추진을 위해 축제 본 행사장에 의성 마늘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관을 기획했으며, 초대형 마늘 탑을 직접 제작해 의성 마늘의 상징성을 높이고 △세계 및 국내소스 전시관과 세계마늘 및 국내 지역 재래종 전시관, 마늘품평회 및 마늘 관련 작품전시관 △마늘 관련 음식 전시관 △마늘요리 시식코너 등 다양한 주제로 의성을 찾은 소비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의성군 마늘생산자연합회장, 마늘발전연구회장, 마늘마이스터대학생장, 의성 마늘 명인 회장, 의성 마늘 혁신센터 일품사업단원, 농기계 임대사업 운영위원 등 마늘 관련 조직체 장을 두루 맡고, 봉양면 농촌지도자회장, 봉양 향토사랑회 부회장, 봉양면 체육회 부회장 등을 거치며 지역사회 발전과 복지농촌 건설에 헌신하고 봉사했다.

그러나 이진우 명인은 단순히 단체에 발만 들여놓은 것이 아니다.

의성군 농촌지도자회 봉양면 회장을 역임하면서 회원들의 역량 향상을 위해 매년 선진농장 현지 연찬 교육을 해 급변하는 농업의 조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함께 배우며 발전하는 조직을 만들어갔다.

농자재 공동구매사업을 10년 넘게 추진해 자체기금을 크게 증대시키고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경상북도 농촌지도자회장상을 받기도 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진우 명인은 ‘의성 마늘’이란 질문에 “명인으로서의 홍보와 판매를 더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주변인들의 의견은 달랐다. 이미 의성 마늘이라는 브랜드가 명인을 통해 많은 혜택을 봤다는 것. 명인의 기술개발과 노력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뛰어난 상품성과 저장성을 확보한 것이 지금의 의성 마늘이라는 명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명인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힘닿는 데까지 해야 할 일을 하고 힘에 부치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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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식 기자 mslee@kyongbuk.com

군위 의성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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