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언제 누가 무엇을 하던 그에 적합한 당위성이 없지 않다. 멕시코의 혁명가 판초빌라가 정권을 잡으려 혁명을 일으키면서 남의 것을 빼앗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런 그도 자기합리화를 위해 자신은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 다만 가진 자들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나쁜 짓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판초빌라 그는 자기 나름 당위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부당한 짓이다.

19세기 미국인 헨리 데이비트 소로는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미국 정부가 제국주의적 야심에 멕시코를 침공한 것에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그는 ‘부당한 법의 위반이 정당한 행위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부당함을 합리화하는 정부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진정한 공간은 감옥뿐이다.’ 라고 했다.

옳고 그른 것 부당과 정의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가 정의로운 것으로 착각한다. 아니면 고의적이거나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욕심이라는 것 과욕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이 하는 짓이 옳은 것으로 믿고 행동을 한다.

부당함을 정당화하는 나라에선 정의로운 사람이 갈 곳은 감옥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감옥이 가장 안전하다. 게오르그 크리스토퍼 리히텐베르크는 파리가 파리채에 앉아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

파리가 파리채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한 것과 같이 부당한 것을 합리화하는 정부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갈 곳이 감옥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여파로 손님이 없어 걱정된다는 상인에게 정세균 국무총리가 “편해서 좋겠습니다. 그동안 벌어 놓은 것 조금 쓰시오” 라고 말했듯이 또 문재인 대통령이 반찬가게 주인에게 “경기가 어떠냐?”고 묻자 “경기가 거지 같아요” 했다는데 그렇게 대답하지 말고 국무총리 말마따나 그동안 벌어놓은 것 쓰며 손님이 없어 쉬니 편해 좋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었어야 하는데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잘 못 대답했던 것 아닌가 싶다.

또 “경기가 거지 같아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대통령께서 소상인을 이렇게 걱정해주셔서 경기가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네요?” 그렇게 대답했어야 그래 당신 대답 잘했습니다. 하는 칭찬을 했었을 텐데?

입맛에 맞는 대답을, 그것이 국무총리에 대한, 대통령에 대한 예의인 걸 그들은 대단히 잘못 했다. 부당한 정부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갈 곳, 있을 곳이 감옥이듯, 파리채에 앉은 파리가 가장 안전하듯, 불경기로 어수선한 세상에 안전한 직업은 불경기를 모르는 그들 위정자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지 같은 경기를 알 수 없고, 손님이 있어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사는 것 걱정해야 하는 사람 알지 못한다. 뿐만아니라 그동안 벌어놓은 것 없는 줄 모른다. 설마 알면서 그런 말 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서민들 삶에 대해 몰라서였겠지? 설마 서민들 가슴에 염장지르기 위해 그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부당함을 부당으로 모르는 몰염치가 극성 그래서 정의가 설 곳이 없다. 이래저래 하고 한 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선량한 국민이 안정되게 살 곳이 감옥도 아니고 파리채도 아닌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그놈 코로나바이러스가 오지 않았거나 과거 정부가 잘했으면 지금 이런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을 과거 정부나, 코로나 바이러스 그것들 때문에 지금 국민들 꼴이, 꼴이 아니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잘해 주어서 이만하고 세계 여러 나라가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 잘한 모범국가라며 도움을 청해와 다행이다. 정의로운 국가에서 감옥은 위법한 자만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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