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보수는 부패했지만 실력이 있고, 진보는 청렴하지만 실력이 없다는 통설이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말이고 도대체 ‘보수’와 ‘진보’의 정의도 불분명하지만, 일종의 공식이 되어 나름대로 위력을 발휘해 온 생각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그의 청렴성에 대한 기대보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실력의 보유자라는 이유 때문에 선출되었다. 진보 진영은 자신들이 보수 진영보다 더 엄격한 도덕성의 잣대에 시달린다며 억울해 하지만 국민은 “착한 척 하더니 뒤로는 똑같이 부패했다”고 판단하곤 한다. 그 이면엔 “실력도 없는 것들이 착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여당에 의석수가 몰리고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자 보수 언론들은 저마다 보수의 실력이 이전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연일 훈수에 여념이 없다. 좀 더 면밀히 뜯어보면 대략 이런 식이다. “보수가 실제로는 실력이 있는데, 너무 우직하고 순수했던 나머지 이념에 찌든 진보의 꼼수와 언론 플레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지지를 못 받고 있다. 진짜 실력이 없는 진보는 비도덕적이기까지 해서 나라를 말아먹고 있으니 보수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계기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진단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우선 진보 세력이 “객관적으로 너무 실력이 없다”고 하는 평가의 기준이나 비교의 대상이 불분명하다. 도대체 보수의 실력을 본 것이 언제인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던 시절인가, IMF 사태를 불러온 시절인가,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수십 조 원씩 쏟아 붓던 시절인가, 아니면 비선실세를 통한 각종 범죄로 탄핵의 역사를 쓴 시절인가? 그 시절 권력에 붙어 갖은 아부를 남발하던 자들이 이제 와서 실력을 운운하니 무슨 소린가 싶다.

물론 보수의 무능함이 진보의 실력이 좋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일한 논리로, 보수 언론이 진보 진영의 실패와 무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되뇐다 해서 보수의 실력이 증명되는 건 아니다. 실력 없는 진보 때문에 생기는 작금의 위기를 비판하려면 무엇이 실력임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보수 언론은 끊임없이 오답풀이만 하고 있다.

보수 언론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실력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 그 자체다. 요즘 보수언론에 등장하는 이들의 말과 글에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하고 고시에 붙은 실력자인 자신들이 데모나 하던 자들에게 권력을 빼앗겼다는 울분이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관계조차 불분명한 그 울분에는 자기 실력에 대한 깊은 감동만 느껴지고 자신들을 부패 세력으로 보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보이지 않는다. 대범해서가 아니고 애당초 도덕성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의 위선이 문제지 자신은 솔직하게 부패했으니 괜찮지 않느냐는 식이다. 보수의 실력 타령이 허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혹시 실력이 있다 해도 자기 이익만 구할 집단으로 보이니 지지를 못 받는 것이다.

착하지 않은데 알고 보면 실력도 없는 보수의 재건은 보수언론의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보수 언론은 이제 근거도 없고 철도 지난 실력 타령에서 빠져나와 도덕성의 문제, 특히 자신의 도덕성에 천착하기 바란다. 직함은 민망하게 ‘대기자’로 달아놓고 앞뒤 논리도 없이 ‘실력, 실력’을 외치며 왜곡과 억지를 남발하는 모습이 바로 보수 진영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력이야 쌓으려면 시간이 걸리니 일단 “착하게 살자”고 결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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