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이름을 자꾸 부르다 보면
그들에게 반드시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도 나지 않는 머나먼 과거에 저들에게
엄청난 빚을 져야만 했던 절박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아
이제 그 갚음을 꼭 해야만 하는 날이
내게 온 게 아닐까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든다.
내가 그 옛날에
저들의 품속을 드나들면서 향유를 누렸던 꽃등에였거나
부지런은 하나 제 것만 챙겼던 말벌이었거나
노느라 제 삶도 힘에 부쳤던 나비의 족속이었거나
꽃 피는 날에 무정하게 약속을 잊어버린 꿀벌이었거나
분명 나는 자유혼을 사칭한 방랑자였으리
그래서 꼭 갚아야 하는 빚만 남아
꽃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명치끝이 아려오는 것일 게다.

아픔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감상> 꽃은 기억의 힘으로 피어나기 때문인가. 꽃은 나의 아픔과 전생까지도 불러들이는 것 같다. 꽃에게 신세를 진 꽃등에, 나비, 꿀벌은 갚아야 할 빚을 지닌 자신이다. 꼭 갚음하는 날이 왔을 때 꼭 빚을 갚아야 한다. 때를 놓치면 영영 빚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만다. 대학시절 3만 5천원을 빌려 준 친구 덕택에 나는 한 달 식권을 사서 버티지 않았던가. 20년 후에 갚고 나서야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아픔이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갚을 빚이 없다고, 신에게 떳떳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술과 고기를 대접받고, 남의 지분을 빼앗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후생에서 빚을 갚을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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