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임진년 4월13일 일본군이 부산포 앞바다에 도착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이순신 제독이 이 사실을 안 날은『난중일기』에 의하면 원균의 전통(傳通)과 경상좌수사 박홍이 보낸 공문을 통해서였다. 이 날이 음력 4월 15일 해질녘이었다. 이후 이순신은 5월7일 현 거제도 옥포 조선소가 있는 옥포에서 그의 임진왜란의 첫 전투에서 승리한다. 이후 합포(현 창원시 진해구)와 5월8일의 적진포해전(고성과 창원경계)에서 일본군 44척을 격침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제2차 출전(5월29일부터 6월10일까지)에서 사천해전, 당포해전(통영시), 제 1차 당항포해전(고성군), 율포해전에서 적선 72척을 분멸하고 일본군의 머리도 300여 급이나 베는 등의 대승을 거두었다. 특히 사천해전은 최초로 거북선을 사용한 전투로 유명하다. 이순신의 3차 출전은 7월8일 한산도 대첩과 7월10일 안골포해전(창원시 진해구)이다. 특히 한산도대첩은 진주성대첩(1592.10.5.∼10.)·행주대첩(1593.2.12.)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부른다.

학익진 전법을 구사한 이 해전은 왜장 와키자카가 이끄는 73척을 조선의 이순신, 이억기,원균의 59척이 싸웠다. 결과적으로 왜선은 59척이 본멸, 격침당하고 일본군의 인명 피해는 9,000여 명에 이르렀다. 역사가 헐버트(Hulbert, H. G.)도 “이 해전은 조선의 살라미스(Salamis) 해전이라 할 수 있다. 이 해전이야말로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감탄할 만큼 임진왜란의 전세를 조선쪽으로 유리하게 만든 대첩이었다. 이 전공으로 이순신은 정헌대부(正憲大夫, 정2품 상계), 이억기·원균은 가의대부(嘉義大夫, 종2품 상계)의 품계를 받았다.

이순신 제독의 4차 출전은 8월29일 장림포 해전(부산 사하구 장림)과 9월1일에 있었던 모두 6차의 해전이다. 6차의 해전은 화준구미해전(부산 다대포 인근), 다대포해전, 서평포해전(부산 감천항),절영도해전(부산 영도), 초량목해전, 부산포해전이다. 이 가운데 압권은 왜선이 470척이나 머물고 있던 일본 수군의 본거지를 공격한 부산포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조선군은 왜선100여척을 불태우고 부수었다. 이틀간 7차의 해전에서 모두 130여 척을 분멸시키는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부산대첩은 임진왜란의 첫해인 임진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승이었다.

임진년의 이순신의 출전과 해전은 제 1차가 3번의 해전(옥포, 합포, 적진포), 2차 출전에서 4번의 해전(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제 3차 출전에서 2번의 해전(한산도 대첩, 안골포해전), 제 4차 출전에서 7번의 해전(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초량목, 부산포)등 임진년의 해전은 총 16차례이다. 그러나 보통 총 10번의 해전으로 보고 있다. 임진년의 이순신의 전과는 320척의 일본군선 격침, 일본군 사상자 2만여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조선군의 피해는 단 한척도 없었고, 사상자는 정운을 비롯한 200여 명 미만일 정도로 완벽한 승리가 임진년에 일어났다.

이렇게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백척간두의 조선을 구한 성웅이 된 것은 임진왜란 14개월 전 1591년 2월13일(음력) 류성룡의 천거로 종 6품 정읍현감에서 무려 7품계나 뛰어넘는 당상관직인 정 3품직인 전라좌수사로 파격적인 인사 덕분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하복이 많은 선조의 용인술과 서애 류성룡의 혜안과 탁월한 경세가로의 안목이 일치한 덕택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선택 가운데 하나가 이순신의 전라좌수사로의 인사 조치라고 본다.

을사년(乙巳年,뱀띠) 경진월(庚辰月, 용달) 경오일(庚午日, 말날) 정해시(丁亥時,추정)에 태어난 이순신의 천기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을까? 임진년(壬辰年)의 천기는 월별로 임인월(壬寅月, 음1월), 계묘월(癸卯月,음2월), 갑진월(甲辰月,음3월), 을사월(乙巳月, 음4월), 병오월(丙午月), 정미월(丁未月), 무신월(戊申月), 기유월(己酉月)로 전개된다.

이순신은 사주의 주체성인 일주와 월지가 경진월의 경오일로 매우 신왕한 사주로 임진년은 그에게는 능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식신운(食神運)이었다. 즉 강한 경금(庚金)일주가 호수같은 임수(壬水)를 만나니 샘솟는 아이디어와 기획력 및 창의성을 발휘할 활동무대를 만난격인 금수쌍청(金水雙淸)의 운세였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이라는 말은 아무리 재능이 출중하고 뛰어나도 능력을 마음껏 펼칠 무대를 만나지 못하면 보검을 전쟁에서 쓰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의 용어이다. 이순신 제독의 임진년은 탁월한 자질의 장수가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한, 때를 제대로 만난 해였다. 올 경자년의 국민의 마음을 흔들 영웅은 누가 될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