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역사에는 고정 관념이 존재한다. 과거에 그랬으니까 응당히 그럴 것이란 선입견을 갖는다. 청나라 자금성과 조선국 경복궁도 일례이다. 근대사 권력의 심장부였던 두 장소는 면적 차이가 얼마나 될까. 자금성이 겨우 1.7배 정도 크다. 엄청난 인구와 광활한 제국의 소박함에 놀라울 규모다.

중국은 통상 창장(양쯔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을 나눈다. 강북의 상징 도시는 베이징이고 강남의 대표 도시는 상하이다. 이들 북방인과 남방인은 기질 차이가 뚜렷하다. 흔히 500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으로 가고, 100년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로 가라고 말한다. 상하이는 중국 근현대 시대의 요람이다.

19세기 중엽 영국과의 아편 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난징 조약을 체결한다. 홍콩을 할양하고 항구 다섯 곳을 개방한다는 내용. 그중 한곳이 상하이라 불린 작은 어촌이다. 기존 내륙 도회의 운하 네트워크가 쇠퇴하면서, 철도와 해상 교통 체계를 갖춘 상하이는 20세기 전반까지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됐다.

상하이 이미지는 와이탄의 번드가 이루는 스카이라인과 휘황찬란한 야경으로 표상된다. 황푸강 변에 이어진 제방인 와이탄에는 유럽풍 건축물 소위 번드가 형성됐다. 물론 식민 시대 이권 다툼을 벌였던 서구 열강에 의해서다. 대부분 은행·보험·무역 회사 건물. 이는 역사적 의미를 담은 소중한 잔재다.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은 중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황제 질서를 전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에트 러시아와 연합하여 공산당을 양성한 것이다. 중화 제국 정치 구조에 변혁을 일으킨 터닝 포인트였다.

중국 공산당의 최대 업적은 14억 인민을 가난에서 구제했다는 점이다. UN 통계상 빈곤 수치가 대폭 하락할 정도다.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광대한 땅덩이를 통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주의 체제로 가시적 성공을 성취했음에 틀림없다.

중국 공산당은 거대한 조직을 자랑한다. 당원은 9060만 명으로 총인구의 6.5%에 이른다. 그중 여성 당원이 2470만 명이고 연평균 가입자는 390만 명이나 된다. 국가수반인 시진핑은 동시에 공산당 수장인 총서기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윈난 성 리장에서의 일이다. 번화가인 사방가에는 매일 소수 민족 공연이 열린다. 당연히 수많은 관객이 모인다. 예쁜 치마 차림의 젊은 여성이 하이힐에 빨간 어깨띠와 빨간 피켓을 들고서 군중 사이를 오갔다. ‘여강고성 당원 지원자 모집’ 중국만의 고유한 캠페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있어 상하이는 중요한 함의를 품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독립투사 윤봉길 의거. 훙커우 공원(현재 루쉰 공원) 안에는 그의 기념관 매원이 있다. 입장료도 징수한다. 흉상 왼편엔 물통 폭탄과 회중시계가 전시됐고 뒤쪽엔 ‘장부출가 생불환’ 글자가 쓰였다.

매원 앞마당엔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자판이 설치됐다. 충남 예산 출생으로 1930년 부모님과 아내와 아들을 남기고 고향을 떠났다. 칭다오에서 세탁소 일을 하다가 김구가 단장으로 있는 상하이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1932년 4월 29일 일본의 천장절과 전승 기념식이 열린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요인을 저격했다. 24세 꽃다운 젊음의 장렬한 쾌거다. 세상엔 잊지 말아야 할 죽음이 있다. 우리들 가슴에 고동치는 연면한 최후들. 윤봉길 의사의 순국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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