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지난 주 어버이날을 보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제게는 부모님이 상처입니다. 소설가 김훈이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라고 말했습니다만, 저에게 부모님은 늘 상처를 통해서만 추억되곤 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가슴 아픈 풍경들이 많이 있었던 거지요. 한동안 그것들은 해석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냥 상처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만큼 아팠다는 거겠지요. 나이 들고서는 좀 덜합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 사는 게 고통일 수밖에 없다는 불가의 가르침이 절로 체득되는 나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명한 인류학자였던 로렌 아이슬리가 그의 자서전 『그 모든 낯선 시간들』에서 쓰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몇몇 문장이 그런 저의 심정을, 비록 그 내용은 다르지만, 알뜰히 대변합니다.


“내 어머니는 여든여섯에 죽었다. 내가 기억하는 생애 내내, 정신이상은 아니었다고 해도 신경과민이었던, 자신의 미적 감각을 한 평원(平原) 읍의 살롱 미술에 다 써버렸던, 그 여자가 죽었다. 그녀의 편집증적인 존재 전체가 내 어린 시절부터 내내 그녀 주변의 세계에 대한 고의적인 왜곡 및 수탈로 허비되었다. 내 두뇌를 가로지른,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내가 가로등 아래로 걷게 만들었던, 그 어머니는 그렇게 죽었다. 상처만 남기고. [중략] 어머니는, 17세기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리고 그 안에 그녀 자신의 성이 안치되어 있는, 중세의 마녀들처럼 내게 인지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는 곳을 옮긴 그녀는 폭력과 불화의 중심이고 그 파문이 여전히 끝없이, 심지어 살아생전 그녀를 결코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 속에서조차 퍼지는 중이었으나, 정작 그녀는 잠을 자다 평화롭게 죽었다. 내겐 마치 폭풍의 눈이 지나간 것처럼 여겨졌다. [로렌 아이슬리(김정환), 『그 모든 낯선 시간들』, 일부 내용 인용자 첨삭]


로렌 아이슬리의 어머니 혐오는 그녀가 자식에게 남긴 상처와 비례합니다. 그는 죽어서조차 어머니 근처에 묻히기를 거부합니다. 어머니의 삶을 용서는 하지만 영원한 안식까지 함께하기는 싫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의 상처는 죽어서도 아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버이날을 보내는 소감으로서는 너무 야박한 내용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며 ‘내 두뇌를 가로지르는’ 듯한 전율을 느껴야 했습니다. 특히 그가 어머니의 묘비를 쓰다듬으며 남기는 한 마디가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는 한쪽 귀가 어두웠던 어머니, 미모는 타고났으나 타인과의 소통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어머니,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로 들어와 자신을 낳고 그 후로 내내 주변과 불화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요, 엄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죠. 그냥 쉬세요…”

며칠 전 점심시간에 동행 중 일인이 코로나19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수백 가지 변이가 일어나서 백신을 만들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겠지만 ‘변한다’에 초점을 맞추어서 역발상의 대응을 하다 보면 오히려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외국 학자 중 누군가가 그런 소견을 발표했다고 근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네!”라고 말했습니다. 인연에 따라 변할 뿐인 것이 존재 그 자체이니 바이러스 또한 그 안에 들 수밖에 더 있겠느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무를 타고 험난한 곳을 건넌다. 나무라는 것은 오로지 내를 건너는 도구이다. 험난한 곳을 건너는 데 항상 환(渙)의 도를 쓰면 반드시 공(功)이 있다.”라는 주역의 말씀도 상기했습니다. ‘환의 도’는 자신을 흩어버려 일체를 비우는 것을 뜻합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고정된 나는 그저 상처 그 자체일 뿐이니 흩어버려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인생고해(人生苦海)를 ‘나무를 타고’ 건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