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얼마 전에 강화도 1박 2일 탐방 길에 정수사(淨水寺)를 찾았다.

안내판에 신라 선덕여왕 8년에 회정선사가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한 후 이곳 지형이 불자가 삼매(三昧) 정수(精修)할 곳이라 하여 절을 짓고 정수사(精修寺)라 했으며, 조선 세종 때 함허대사가 절을 중수한 후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을 발견하고 淨水寺로 절명을 바꾸었다고 밝히고 있다.

절명을 바꾼 까닭이 별로 이해되지 않았다. 법당 앞에 서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대웅보전의 꽃살문이다.

출입문짝 전체가 통판 투조(透彫) 형식으로 화병과 꽃을 통째로 투각하여 그 병에서 나온 줄기와 꽃으로 가득 채운 문(門)이었다.

중앙 어간(御間) 네 문짝에 문짝마다 꽃병으로부터 꽃이 피어나간 모양을 조각한 꽃살창호이다. 항아리에서 끊임없이 긴 넝쿨줄기들이 올라가고, 줄기의 마디마다 꽃이 달려 문을 가득 채웠다.

이 문양이 네 짝의 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당의 천장 네 귀에도 있었다. 법당의 빗천장에 꽃병이 있고, 꽃병에서 넝쿨줄기가 뻗어 나오고, 꽃들이 가득 달려 있다.

사방연속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연꽃, 모란꽃이 화병 위로 뻗어 오르는 모습을 조각한 것은 부처님께 꽃을 바쳐 공양하려는 숭앙심의 표현일까? 답사 팀장 정찬두 선생이 만병(滿甁)이라 했다.

만병(滿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가득하다는 말인가? 병 안에 가득하다면 무엇이 가득 차 있다는 말인가? 만병이란 병 모양만 아니라 항아리, 접시, 사발 등 일체의 용기를 말하며, 만병, 즉 ‘가득 찬 병’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대 생명력이 가득 차 있는 병’이거나, 혹은 ‘만물 생성의 근원인 가시적인 물이 가득 차 있는 병’을 뜻한다고 한다.

만병과 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꽃잎도 아니요, 꽃향기도 아닌 씨앗이라고 한다. 씨앗(보주)에는 우주에 가득한 생명력이 담겼으며, 이런 형이상학적인 꽃을 꽂은 병을 만병이라고 한다고 한다.

법당 가운데 문짝의 만병은 항아리라고 할 만큼 크다. 그 가운데 한 개 문의 만병 몸체에는 끊임없이 생성 반복되는 무늬로 생명탄생과정을 나타내는 추상적 영기문이 그려져 있고, 다른 병에는 연꽃모양 영기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한 만병에서는 위에서 본 큼직한 연꽃이 있는데 가운데에 씨방이 있다. 생명생성의 산실이다. 그 연꽃에서 사방으로 여러 갈래의 연잎이나 연봉이 확산돼 나가고 있다. 줄기에 가시들이 있으므로 연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한다. 연꽃이 아니고,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거대한 영기꽃(靈花)이라고 한다.

꽃병은 꽃병이 아니고 만병이요. 연꽃은 그냥 연꽃이 아닌 영기꽃이라는 설명이다.

그다음 그 양쪽의 두 문짝을 보면 모란꽃 줄기가 수직으로 솟구치며 가지를 쳐 수많은 모란꽃을 피우고 있다. 분명히 연꽃과 모란인데 그 전개과정이 현실에서 보는 방식이 아니다. 사람들은 ‘장식’이라고 말하지만, 모란 역시 모란이 아니며 영기꽃이다. 빗천장에서 발견되는 만병에도 마찬가지로 만병으로부터 영기꽃 줄기가 뻗쳐 나오고 있다.

왜 이런 만병, 영기꽃을 새겼을까? 끊임없는 ‘여래의 화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현실적 이익에 얽매인 사람들에게는 여래의 화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병 속에 담긴 생명수, 그 생명수를 머금고 끊임없이 뻗어나는 영기꽃과 영기문(靈氣文), 자비로 충만한 여래화생(如來化生)의 세계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담겼으리라 나름으로 인식했다.

여러 가지로 혼란한 현실에서 진정한 생명생성, 여래화생이 도래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알아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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