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동안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 냄새 나는 책을 열면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물고기가 냇물인 줄 알고 헤엄쳤다
물고기는 작고 납작해져 갔다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이 물고기 뼈처럼 아주 단순해져 갔다
터미널처럼 어지러운 머리와
타인과 이어지려는 마음은
책에 흐르는 냇물 속에 부드럽게 풀어진다

노트 위에 한 줄 맑은 바람이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 투명한 물고기가
뼈를 비춰 내며 헤엄치고 있었다



<감상> 책을 읽는 여인은 햇볕을 담은 북동풍, 샛바람을 불러들인다. 이 바람은 물을 따뜻하게 하고 물고기를 끌어당긴다. 문장 사이에서 물고기는 입들이 옴직거리고 지느러미를 마구 휘젓는다. 그만큼 책을 읽으면 문장에 몰입하게 되고 삶에 생기를 되찾는 기쁨을 준다. 한 권의 책이 물고기 몸이라면, 마음에 와 닿는 한 줄의 문장은 물고기 뼈처럼 단순하고 명확하다. 책을 온전히 읽은 후, 노트에 한 줄의 문장을 적으면 바람이 지나가고 뼈 속까지 투명한 물고기가 모여든다. 스몸비가 넘치는 시대에 책을 읽고 노트에 필사(筆寫)하는 여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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