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승천한 전설의 산 사계절 짙은 솔향 가득

용두암과 월포해변 그리고 소나무와 바다가 한폭의 그림이 된다.

포항 근교에서 기(氣)가 좋은 곳으로 이름난 북구 청하면에 있는 용산(龍山·190.1m) 종주산행을 소개하고자 한다.

용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크게 네 군데가 있다. 청하 용두리에 있는 포스코 월포수련원 주차장에서 두 갈래 산행로가 있고 남쪽 소동리 이스턴골프장 쪽에서 오르는 두 가지 산행로가 대표적이다. 용산 종주코스는 용두리 쪽에서 소동리 쪽으로 넘어가는 길과 반대로 종주하는 코스가 일반적이고 거리는 5㎞ 정도로 산행시간이 3시간이면 충분한 코스다.

어느 쪽으로 올라도 그리 어렵지 않고 순탄한 솔 숲길의 연속이라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해풍(海風)을 맞으며 시원스런 산행을 즐길 수 있어 근교산행과 힐링코스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용산을 드나든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아직도 용산의 매력에 빠진 듯 한 달에도 두세 차례 다닌다. 그러다 보니 눈감고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산은 그리 녹록지 않아 오를수록 어렵게 느껴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 해도 함부로 대하거나 가벼이 여기면 어김없이 그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산꾼들은 잘 안다.

산길에서 만나는 나무의자와 탁자가 동화 속 그림같다.

사계절 언제 올라도 용산의 정기를 가득 받을 수 있고 소나무 숲에서 풍겨 나오는 짙은 솔향은 정신을 맑게 하고 찌든 일상을 깨끗하게 씻어줄 수 있어 필자가 늘 좋아하는 친근한 벗 같은 산이다.

요즈음처럼 코로나바이러스로 지쳐 있는 심신을 달래고 먼 곳으로 여행이나 트레킹 등을 떠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달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피해 호젓하게 힐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근교산행지로 용산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산행 초입에 놓여진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용산은 이름 그대로 용(龍)과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옛날 월포리에 사는 금실 좋은 부부가 어렵게 얻은 아들이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탓에 태어나 얼마 안 되어 부모로부터 죽임을 당하자 이 산에 살던 용이 아들의 혼과 함께 승천(昇天)하였다 하여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린 산’, ‘용산(龍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용이 하늘로 날았다는 이 산에는 아직도 용의 기운이 남아 동해바다의 용왕과 견고한 바위가 둘러쳐진 암산(巖山)으로 그 기세를 품고 있어 언제 올라도 기(氣)가 느껴지는 듯 힘이 솟구치고 있다. 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용산 곳곳에 기도처가 있고 산등성이 암반에는 물이 고이는 웅덩이가 여럿 있다.

수년 전 이곳에 감사둘레길을 만들어 그 이름을 ‘겸재 정선 길’이라고 붙여 산을 찾는 산객들에게 명구(名句)들을 적어 여기저기 부착해 오가는 길에 마음을 다스리도록 한 적도 있는데 요즈음은 낡고 헤진 탓에 그 명성이 빛이 바래긴 하지만 자연이 주는 명언들이 여전히 산속에 있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조선 영조때 청하 현감을 지낸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우리지역 최고의 명승지인 내연산(內延山)을 그려 우리나라 고유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발원지로 이름을 날린 역사를 기리며 지은 ‘겸재 정선길’로 오르는 종주코스 들머리는 포스코 수련원 주차장 오른쪽에서 시작하고 초입에 우리지역에서 보기 드문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놓여 있는 초지를 지나게 된다.

신석기시대에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거석(巨石)의 고인돌들이 처음 보는 산객을 놀라게 한다. 고인돌을 지나 솔숲 사이로 난 가파른 오르막을 십여 분 오르면 하늘이 뚫리고 너른 바위에 올라타게 된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만나는 용두암을 밑에서 본 모습.

깎아지른 절벽으로 바다 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인 이 바위의 이름이 ‘용머리바위’, ‘용두암(龍頭岩)’이다.

월포리 쪽으로 해안선에 고운 빛 백사장이 만들어지고 해변 솔숲 속에 포스코 수련원이 그림같이 자리 잡고 있다. 월포해수욕장의 갖가지 시설과 월포리 마을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해안 절경을 만들고 용머리바위 정수리에는 하트(사랑)모양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 하늘을 비치고 있다. 필자가 이름 붙인 ‘사랑샘’이다.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신기하게 여기지는 바위다.

이곳 포토존에 서면 월포해변과 망망대해 동해바다와 동해중부선 철도가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용산 최고의 뷰(View)가 그려진다. 용산의 기(氣)가 이곳에 모여 있는 듯 심호흡하면 그 기가 몸속으로 바로 들어오는 것 같다.

두번째 정자에서 바라 본 파란 하늘과 짙은 녹색 숲사이로 코발트색 바다가 조화를 이룬다.

용두암에서 조금 더 가면 필자가 매년 1월 1일 해돋이 하는 명소(?)가 나오고 이어지는 산등성이에 정자가 있어 숨을 돌리며 사위를 둘러본다. 청하 뜰의 너른 농토와 7번 국도와 함께 새로 건설되는 동해고속도로 첫 구간(포항~영덕) 공사현장이 한눈에 보이고 푸른 바다 위를 떠가는 고깃배들의 움직임도 시원스럽게 볼 수 있다.

용산 정상에 놓인 탁자와 빨간 우체통이 이채롭다.

정자를 지나 조금 오르면 용산(190.1m)정상 표지석이 놓인 곳에 닿는다. 정상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오르는 길에 보이는 조망과 용두암의 기를 느낄 수 있어 결코 짧은 산행길이 아닌 것 같다.

정상에는 ‘감사쉼터’ 라는 안내판과 쉬어 갈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있고 빨간 우체통이 동그마니 산객을 반긴다.

정상을 지나 ‘솥바위’ 쪽으로 난 숲길을 내려서면 물웅덩이가 여럿 나 있는 너른 바위가 나온다. 움푹 파인 바위 웅덩이에 밥을 해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면서 ‘솥바위’(임금바위)라 불리는 바위다. 용산 곳곳에 암릉과 암반이 늘여있어 산 전체가 바위로 만들어진 바위산임을 알 수 있다.

오래전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문제로 시끄러웠던 이유가 산 전체가 암반으로 되어 있어 방사능페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유력하게 거론되었지만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적이 있다.

산불감시탑과 소동리 가는 길 삼거리 표지판.

다시 주능선으로 산길이 나 있다. 왼편에는 동해바다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청하벌판과 7번 국도가 지난다. 평탄한 산길을 가다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으로 가면 월포수련원 주차장에서 염소목장을 지나 오르막을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고 오른쪽 길로 오르면 소동리 이스턴골프장으로 가는 산길이다.

종주산행 길은 소동리 쪽으로 나 있어 오르막을 20여 분 오르면 또 다른 정자가 나온다. 정자까지 오는 길에는 유독 두릅나무와 산딸기가 지천에 깔려 제철에는 영양가(?) 있는 산행을 할 수가 있는 때도 있다.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사방을 조망하면서 쉬어간다.

멀리 영일만이 훤히 보이고 포항 도심 고층아파트들이 산처럼 솟아 있고 내연산줄기와 비학산 마루금도 볼 수 있다. 간단한 음식과 음료로 끼를 때우고 다시 발품을 팔아 갈림길에 닿는다. 소동리에서 바로 오르는 길은 의성(義城) 김씨 문중 묘소들이 많이 보이고 산등성에는 웅덩이가 여럿 파인 암반을 볼 수 있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산길로 이름 난 길이다. 어느 쪽으로 가도 소동리에 닿게 되어 있어 평소 잘 가지 않았던 선재사와 감시탑 쪽으로 산행을 이어나간다.

조금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기도처 가는 길’이라고 표시되어 그 길로 나서면 너른 암반 아래 자그마한 기도집이 있고 바위 한가운데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시탑으로 가는 길은 짙은 소나무 숲길이 잘 나 있고 모처럼 솔잎이 융단처럼 깔린 푹신한 비단길을 걷을 수 있다. 오르막 내리막이 교차하는 산길이라 내리막에서는 조심해야 할 데가 더러 있다.

산불감시탑의 산불조심 깃발이 파란 하늘에 나부낀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바로 앞에 산불감시탑이 나온다. 높은 망루에서 산불감시요원이 내려다본다. 산불예방을 위해 애쓰는 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감시탑 주변에 자그마하게 쌓아놓은 케룬(돌탑)에게도 눈인사를 한다. 돌탑 중앙에 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목각이 산객을 웃게 한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하산 길 군데군데 자그마한 돌탑들이 길 가장자리에서 안내를 한다. 하나같이 다른 모습을 한 돌탑들을 쌓은 분이 누구인지 몰라도 산행길을 즐겁게 해주는 마음이 산을 닮아 넉넉할 것 같다. 선재사로 갈라지는 곳에서 좌측 소동저수지로 빠져나온다. 잔잔한 물결에 비친 산 그림자와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이 5월의 푸르름에 어린다.

산불감시탑아래 만들어진 돌탑과 남근목각이 이채롭다.
산불감시탑아래 만들어진 돌탑과 남근목각이 이채롭다.

용산 종주산행은 봄에는 진달래, 산철쭉 등 봄꽃 화원 속을 거니는 환상의 길이며 신록이 짙어지는 여름날엔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솔바람이 상쾌하게 불어대는 피서지가 된다. 가을은 가을대로 바다 향을 맡으며 산색을 즐기고 겨울에는 따사로운 햇살 속으로 발품을 팔며 볕 잘 드는 벼랑 겨울밥상(?)에 앉아 뜨거운 컵라면과 커피로 한낮을 보내며 힐링할 수 있는 사계절 산행이 즐거운 곳이다. 소동저수지에서 이스턴골프장으로 내려서면서 종주산행을 마무리한다. 그리 길지 않고 어렵지 않은 산행이라 걸어서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코스로 추천할만하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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