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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백서농장의 모태가 된 신흥학우단이 탄생하다
[아침광장] 백서농장의 모태가 된 신흥학우단이 탄생하다
  • 강윤정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 승인 2020년 05월 14일 18시 05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5월 15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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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정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강윤정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1913년 동포사회를 이끌던 경학사가 해체되었다. 그러나 신흥학교만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석주 이상룡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표현하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1913년 또 하나의 조직이 탄생했다. 바로 신흥학우단(新興學友團)이었다. 신흥학교 졸업생 김석·강일수·이근호 등의 발의로 5월 6일, 합니하 신흥학교에서 창립되었다.

정단원은 교직원·졸업생이었고, 재학생은 준단원으로 참여하였다. 학우단의 첫 이름은 다물단(多勿團)이었다. ‘옛 강토를 회복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다물단은 뒤에 학우단으로 바꾸었으며, 본부는 대화사에 두었다. 신흥학우단은 “혁명대열에 참여하여 대의를 생명으로 삼아 조국광복을 위해 모교의 정신을 그대로 살려 최후일각까지 투쟁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투쟁 목표와 더불어 강령도 만들었다.

‘다물’의 원동력인 모교의 정신을 후인에게 전수하자.

겨레의 활력소인 모교의 전통을 올바르게 자손만대에 살린다.

선열 단우의 최후 유촉을 정중히 받들어 힘써 실행한다.

이와 같은 목표와 강령 이외에도 학우단 단원들은 ‘선열의 시범·단시(團是)·단가(團歌)’ 등을 낭독하고 애창했다. 그 가운데 ‘선열의 시범’ 다섯 가지는 겨레를 향한 자신들의 결연한 맹세였다.

나는 국토를 찾고자 이 몸을 바쳤노라.
나는 겨레를 살리려 생명을 바쳤노라.
나는 조국을 광복하고자 세사(世事)를 잊었노라.
나는 뒤의 일을 겨레에게 맡기노라.
너는 나를 따라 국가와 겨레를 지키라.

창단 뒤인 5월 10일 신흥강습소에서 제1회 임시총회를 열었다. 이날 25명이 참석하였다. 이들 가운데 경북사람으로는 이형국(李衡國)과 강남호(姜南鎬, 이명 강호석·강덕재)가 확인된다. 이형국은 석주 이상룡의 조카이며, 강남호는 사위이다. 이들 외에도 김동삼이 총무부장으로 활약했다는 기록도 보이지만, ‘신흥교우보’에서는 김동삼의 이름이 확인되지 않아, 이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김동삼이 1915년 신흥학우단이 주축이 되어 꾸려진 백서농장의 장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시사한다.

신흥학우단은 여러 사업을 펼쳐나갔다.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신흥교우보’를 발간하였으며, 학교설립을 통한 교육사업, 군사훈련 연구와 실력 양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신흥학우단의 경험은 뒷날 독립군영 ‘백서농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는 1913년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흥학교릎 포기하지 않고 역량을 집중했던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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