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땅이 좁은데 그 속에서 또 당론이 갈라져 화합하지 못하고, 공평하지도 못한 상황이며 그것이 이미 고질화 되었습니다. 근자에 와서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이 돼 한 쪽만 뽑아 쓰고, 셋을 버리며 발령을 내기도 전에 당색을 먼저 정하게 되니 어찌 어진 이를 얻을 수 있으며 정치가 바르게 될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리가 수령인데 그들 대부분이 부호의 자제들로 교만하고, 사치하여 백성의 고통을 돌보지 않고 부역과 징세에만 가혹해 나라의 원기가 상하고 근본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전하께서 근원을 밝게 하지 않고 한갖 그 지엽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국교를 맺어 해마다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고 근년에는 흉년이 거듭돼 조세 수입이 감소, 국고는 거의 고갈상태입니다. 군수 비축도 바닥이 났으나 낭비되는 비용이 바닷물처럼 과다해 돈 쓰기를 분토(糞土)처럼 하면서도 책임 있는 관리는 그 자리를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천승(天乘)의 나라라도 어찌 가난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영조가 ‘바른 말을 구한다’는 교지를 내리자 사간원 사간 조덕린이 올린 ‘십조목의 상소문(十條疏)’의 일부다. 그는 탕평책을 주장하는 대목에서 거듭 당쟁의 폐해를 열거하며 탕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로지 임금이 호오(好惡)의 사심을 버리고 공정한 도리에 따름으로써 탕평의 실효를 거둘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당쟁이 극심한 정세 속에서 조덕린의 ‘10조소’는 무사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대신들의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 돼 함경도로 유배 당했다.

영조는 ‘10조소’를 충성스런 지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권신들의 유배 주장 성화에 임금도 어찌할 수 없었다. 조덕린이 유배길에 오르자 영조는 탄식했다. “공에게 죄가 없는 줄 내가 잘 알지만 이 많은 화살촉과 빽빽한 칼날을 나라고 한들 어찌 하겠느냐”

패거리 정치 극성 속에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소신을 잃지 않은 조덕린의 올곧은 기개를 요즈음 공직자들에겐 찾아 볼 수 없다. 위안부단체 ‘정의연’의 비리를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친일 세력의 공격”이라고 삿대질 하는 여권 정치인들이 총선 압승을 먹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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