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오는 것도 한 그늘이라고 했다
그늘 속에
꽃도 열매도 늦춘 걸음은
그늘의 한 축이라 했다

늦춘 걸음은 그늘을 맛보며 오래 번지는 중이라 했다

번진다는 말이 가슴에 슬었다
번지는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옛날이 아직도 머뭇거리며 번지고 있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랑의 옛말,
여직도 청맹과니의 손처럼 그늘을 더듬어
번지고 있다

한끝 걸음을 얻으면 그늘이
없는 사랑이라는 재촉들,
너무 멀리
키를 세울까 두려운 그늘의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사랑이라는 옷을 아직 입어보지 않은
축축한 옛말이지만

<감상> 옛말인 ‘닷오다(사랑하다)’의 명사형 ‘닷옴’을 현대 국어식으로 표기한 것이 ‘다솜’이다. 사랑이 급변하는 시대에 은근한 성격을 지닌 이끼처럼 다가오는 말이다. 이끼의 지향하는 마음 상태가 오래 생존하는 비결이었듯, 사랑을 통해 얻는 것보다 으늑하면서도 적막이 있는 그늘은 오래 번질 것이다. 꽃과 열매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은근하고 습습하면서 연한 초록으로 남을 사랑, 온전한 사랑이라는 옷을 입지 못해도 오래 번질 사랑, 이런 사랑은 이끼처럼 멸종하지 않고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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