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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단] 가정(家庭)
[아침시단] 가정(家庭)
  • 이상
  • 승인 2020년 05월 21일 16시 16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5월 22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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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암만 잡아당겨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생활(生活)이 모자라
는 까닭이다. 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조른다. 나는 우리집 내
문패(門牌) 앞에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나는 밤 속에 들어서서
제웅처럼 자꾸만 줄어든다. 식구야 막아놓은 창문 어디라도 한 구석
터놓았다고 내가 거두어져 들어가야 하지 않나. 지붕에 서리가 내리
고 뾰족한 데는 침(鍼)처럼 달빛이 묻었다. 우리집이 앓나 보다. 그
러고 누가 힘에 겨운 도장을 찍나 보다. 수명을 헐어서 전당(典當)
잡히나 보다. 나는 그냥 문고리에서 쇠사슬 늘어지듯 매어달렸다.
문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감상> 내 마음의 문이 잠겨서, 내 시름과 질병 때문에 대문을 열 수가 없다. 제웅(액막이용 허수아비)처럼 내 영혼이 얼마나 위축되고 황폐화되었으면 문을 열 수가 없나. 나만 지쳐 있는 게 아니라, 가정(家庭)에서도 아무런 희망을 찾을 길 없다. 한의사가 침을 들고 병든 우리 집을 고쳐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이 있다. 재산뿐만 아니라 이승의 수명까지 단축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인가. 우리 집에서 기댈 언덕이 없고 고생한 식구 중 하나는 일찍 이승을 떠나지 않았던가. 지금은 문고리의 쇠사슬처럼 매달려 있지만, 두드리다 보면 어느 땐가 문이 환하게 열릴 날을 고대해 본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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