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코로나19의 긴 터널 속 장정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00일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전염병의 확산과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에 대응하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아마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이른바 새로운 보통의 상태(뉴 노멀)가 정착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니, 앞으로 100일 후에는 전 세계 모든 곳에서 큰 불길은 잡았다는 평가만이라도 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한 방역으로 위안을 얻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비해 더 성공적으로 상황을 관리해 냈다. 정부와 질병관리본부, 의료진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충실히 실천한 높은 시민의식의 결과다. 특별히 지난 4·15 총선을 단 한 명의 전염 사례도 없이 치른 것은 모두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는 전염병 창궐의 상황은 이미 입증된 시민의식의 확장을 다시 요구한다. 지금까지 발휘된 우리의 시민의식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자발적인 생활 방역과 자가격리 중에 있는 이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런데 전염병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자가격리 처분을 받은 사람들이 가족과 일터로 돌아왔을 때 겪는 어려움은 질병 자체만큼이나 심각할 수 있다.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면 그 어려움은 금방 알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어떤 직장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최상의 치료를 제공하는 의료진과 의료보험 제도, 그리고 치료 후 자가격리 기간 동안 건강을 확인하는 공무원과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 자원봉사자들은 이미 확보되어 있다. 전 국민에게 지급한 재난 지원금도 있으니 당장의 소비를 위한 대책도 어느 정도는 마련된 셈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한가? 완치 후 이 사람은 자신의 가족과 직장으로 (마음 편히) 돌아갈 수 있을까? 자기 때문에 사무실이 폐쇄되어 업무가 마비되고 자신과 동료의 가족까지 코로나19 검사와 자가격리로 고생한 사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코로나19에 걸린 것은 잘못이 아니라 피해지만, 전염병은 피해자를 다시 가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감염이 되었거나 감염 위험군으로 분류되면 불가피하게 주변에 큰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주변에서는 원망의 마음이 생기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심리적 방역망, 성숙한 시민의식이 확장되어야 한다. 모두가 불의의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그 고통 때문에 애먼 확진자를 원망하는 대신 귀환하는 완치자를 기쁘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앞으로 다른 신종 전염병이 다시 유행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개인적 배려에서 더 나아가 그런 원망의 상황이 최소화되도록 하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들도 고려해야 한다.

온라인 수업을 하는 대학에 출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지만, 내가 이런저런 방역 수칙을 지키며 조심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나의 감염이 우리 학교에 끼칠 파장이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동료나 학생 중 누군가가 코로나19에 걸려 그 상상 속의 파장이 모두 일어난 후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를 따듯하게 맞이하고 격려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점검해 보려 한다. 바이러스가 몸을 공격할지언정, 내가 속한 공동체를 파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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