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몇 년전 낙동강가의 병산서원과 만대루에서 류성룡의 후손분들에게 특강을 한 필자는 서애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알게 되어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난다. 서애의 천시를 육십갑자로 환산하면 그의 사주팔자는 다음과 같다.

시주 일주 월주 년주  
⑧갑(甲)목 정인  ①정(丁)화 일간  ⑦신(辛)금 편재  ⑥임(壬)수 정관  천간 
④진(辰)토 상관 ③축(丑)토 식신  ②해(亥)수 정관  ⑤인(寅)목 정인 지지
을계무(乙癸戊) 계신기(癸辛己) ㉮무갑임(戊甲壬)
갑목 사령
무병갑  지장간

조선시대는 3정승에 해당하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역임한 인물도 수백명이고 조오현이 저술한 『조선의 영의정』에 보면 총 176명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을 역임했다고 분석했다. 삼정승을 모두 역임한 인물은 114명이다. 그러나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들은 20여 명에 머물고 있다. 지금은 3부 요인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영의정이다.

조선전기는 태조대 배극렴, 조준, 태종대 하륜, 세종대 황희, 문종대 황보인, 세조대 신숙주, 정인지, 한명회, 중종대 박원종, 정광필, 선조대 이준경, 노수신, 이산해, 류성룡, 류영경,이항복 등이 영의정으로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활약했다. 17세기는 광해군대 이덕형, 정인홍, 인조대 이원익, 최명길, 효종대 김육, 현종대 정태화, 숙종대 허적, 남구만 등이 영의정으로 활약했다. 18세기는 경종대 김창집, 영조대 이광좌, 김재로, 홍봉한, 정조대 서명선, 김치인, 채제공 등이 많이 알려졌다. 19세기는 순조대 심환지, 철종대 김좌근, 고종대 심순택, 김홍집, 조병세, 순종대 이완용 등이 유명하다. 이 가운데 류성룡은 국난극복의 명재상으로 『징비록』의 저자로, 이순신과 권율을 발탁한 인물로 널리 알려진 조선의 대표적인 영의정이다.

한 인물의 천기를 분석하려면 태어난 달과 생일과의 관계가 일차적인 기준점이 된다. 서애는 겨울의 초입인 ②해(亥·돼지)월의 ①정화(丁火)일간(日干)으로 태어났다. 음양오행상 목(木)인 갑은 생목(生木)과 사목(死木)의 구별이 필요하고, 잔디같은 을목(乙木)은 거의 생목에 해당한다. 목은 생명활동이 시작되는 봄의 단계로, 화(火)는 여름의 단계로 생식이 가능한 분열과 확산의 단계로 보아, 남녀가 결합하는 청년기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태양의 빛과 같은 병화(丙火),사화(巳火·뱀)는 빛으로 작용하고 정화(丁火)와 오화(午火)는 열로 작용한다. 그러나 정화와 오화가 빛으로 작용하면, 어둠을 밝히는 별과 같은 존재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뜻을 가지게 된다. 결국 화는 정신적이고 이론적인 빛과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재능인 열을 구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체적으로 음력 5월부터 7월까지의 오미신(午未申)월은 정화가 열로 작용한다.

이 사주는 태어난 달을 중심으로 월령 지장간 ㉮무갑임(戊甲壬)가운데 ⑥임(壬)수 정관이 년간(년의 천간)에 투출(透出)한 정관격사주가 된다. 정관(正官)이란 합리적이고 그 사회의 시스템인 헌법이나 체제의 준수를 바라고 직장상사나 자녀를 상징한다. 또한 정관은 계통적인 것을 선호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행정업무에 능한 책임감과 인내심이 강한 인물이다.

『자평진전』의 격국이론에 의하면 정관격이 성격(成格)이 되어 사회적인 인물이 되려면 현실적인 경제관념이나 경영마인드 및 결과를 중시하는 현실성 있는 편재(유동자산)와 정재(고정자산)로 이루어진 재성(財星)과 지식이나 학식 및 정신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정인(正印)이 사주에 있으면 된다. 이 사주는 ⑦신(辛)금 편재(偏財)와 ⑤인(寅)목 정인 및 ⑧갑(甲)목 정인이 있어 일간인 ①정(丁)화를 보좌하니 큰 인물이 될 조건이 만들어졌다.

즉 정인의 이상주의와 편재의 현실주의가 조화를 이룬 사주로 류성룡이 경세가로서 또한 퇴계학맥을 이은 학자로서의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하늘의 기상이나 사회적인 외부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천간이 ⑦신(辛)금 편재+⑥임(壬)수 정관+⑧갑(甲)목 정인의 재관인(財官印)의 삼귀가 모두 갖추어진 대귀(大貴)할 사주임을 읽을 수가 있다. 퇴계가 류성룡을 보고 하늘이 낸 인물이라고 한 역학적인 근거가 사주에 나타나 있다.

그는 임란시 조선의 내정과 군사를 총괄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봉급 받는 군대(국가상비군)인 훈련도감 설치와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란 병법서를 저술하여 이순신에게 보냈고 특산물 상납제도를 모두 쌀로 내게 하는 대동수미법을 시행했다. 저술가나 학자의 자질인 정인(正印)이 『시경』「소비편(小毖篇)」에 적혀 있는 “내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을 인용한 국보 『징비록』을 저술하게 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