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공자가 위정자(爲政者)의 한문자 표기를 정(政)을 정(正)으로 썼다. 그가 표기한 것과 같이 정치를 하는 위정자는 무엇보다 정직하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 기본이다. 그래서 정사 정(政)자가 아닌 바를 정(正)자를 썼다.

노자의 도덕경에 의하면 천하에 금지하는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들 생활이 더욱 더 가난해 진다고 했다. ‘규제와 같은 금지령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의 생활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이 문명의 이기(利器)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국가는 도리어 더욱 혼란해 진다’라고 쓰였다.

법령이 정비되면 될수록 도둑은 점점 많아진다. 또 사람들의 기술이 발달되면 될수록 기대한 도구가 더욱 많아진다.

그래서 위정자가 무위무욕(無爲無慾)하면 다시 말해 자연에 따라 행위를 하고 사람의 생각이나 힘을 더하지 않고 어떤 것을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며 백성들이 저절로 감화된다. 위정자가 탐욕을 버리고 정직해 지면 백성들 또한 정직해 진다.

공자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충실해야 한다며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고 했다.

또 노자는 무사무의(無事無儀)로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즉 ‘자연은 말이 없어도 춘하추동 계절이 바뀌고 만물은 저절로 생성된다’라고 했다.

까다로운 법을 많이 만들어 낼수록 도둑은 점점 많아지는 것과 같다. 위정자 자신이 무위의 도덕으로 정치를 하면 위정자가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정직해진다. 뿐만 아니라 무사무의로 정치를 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생활이 부유해진다. 위정자가 욕심을 갖지 않으면 백성은 저절로 근검절약한 생활을 한다. 고 했다.

근세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반성해 볼 여지가 좀 많지 않은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물질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풍부해졌다.

때문에 보다 많은 분야에서 욕망이 충만 탐욕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다수 위정자들의 권리 욕(權利 慾)과 물질 욕이 하늘을 찌른다.

문제는 많은 위정자들의 권리욕은 도를 넘는 행위로 치솟고 물질에 대한 욕심 또한 하이에나(hyena)는 저리가라 할 정도다.

호랑이를 비롯한 대부분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먹잇감이 주변에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인간은 무한한 욕심을 갖고 있으며 하이에나는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어도 일단 먹잇감을 잡아 죽여 놓고 본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같은 행위를 두고도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은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 다시 말해 내로남불 그런 태도를 보인다. 인간이 그래서는 안 된다.

안타까운 것은 그래서는 안 될 위치에 있는 위정자들 중에 인격 따윈 뒷전이고, 인성은 오간 데 없으며, 지성 그따위 난 몰라라 하며, 품성 지켜서 뭐해, 그러면서 이기주의에 함몰 분열을 조장하며 내 편 네 편 갈라놓고 내 편엔 죽기 살기로 감싸주고, 네 편은 벌떼처럼 덤벼 닥치는 대로 쏘아 된다. 그러면서 재물 눈에 띄면 쇠 갈퀴질 한다.

국민이 편하고 보다 안전한 국가를 위해서라면 위정자들 지나치게 재물 또는 권력 탐내서는 안 된다. 오직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를 갖고 헌신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위정자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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