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돋기 전에
꽃이 먼저 피듯

꽃이 진 뒤에
잎이 뒤늦게 돋듯

이별 전에
이별이 있었고

이별 후에
이별이 있었다.

바람이 오기 전에
눕는 풀처럼

바람이 지난 뒤에
굳는 뿌리처럼

머물 수가 없어서
서둘러 울고

오래 아팠지만
망각은 없었다.


<감상> 꽃이 먼저 피는 왕벚나무이든, 꽃과 잎이 같이 피는 산벚나무이든 꽃과 잎의 경계를 나눌 수 없다. 한 나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별도 이전과 이후의 경계를 지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네 삶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별이 오기 전에 이별을 예감하고, 이별 후에 단단해지는 상처를 보라. 우리는 한 자리에, 하나의 마음에 머무를 수 없어서 슬프고, 잊을 수 없는 망각 때문에 아프다. 하지만 상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삶이고, 더군다나 이별이 두려워서 어찌 사랑을 멈출 수가 있으랴.(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