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천 경운대학교 벽강중앙도서관장·교수
한태천 경운대학교 벽강중앙도서관장·교수

지난 20일 LG전자가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구미A3공장의 TV 생산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 찌비뚱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구미공장은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TV사업부 인력 500여 명은 그대로 재배치한다고 했다. 인력 감축이 없다고는 하지만 구미산단의 한 주력기업이었던 LG전자가 떠난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LG전자가 인도네시아로 이전한다는 발표를 하자 장세용 구미시장은 LG전자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불가피한 이전 결정을 내렸겠지만 인도네시아로의 이전을 재검토해 달라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간곡히 호소했다. 구미시와 시민단체는 LG전자 이전에 대비한 대책을 세워달라고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하여 리쇼어링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LG전자는 인도네시아로 이전한다.

LG전자의 인도네시아 이전 소식을 접하면서 구미에서의 기업과의 인연 아닌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998년 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20년간 구미에 소재한 기업 관련 다양한 경험을 했다. 기업의 폐쇄도 보았고, 타지역으로의 이전도 보았다. 기업 유치 활동에 몸으로 호소하기도 했고 토론회와 블로그에서는 말과 글로 제안도 했다. 다시 지역 주력기업 중의 하나가 해외로 이전해 가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구미에 처음 발을 디디던 해에 OB맥주 구미공장의 폐쇄를 경험했다. 1998년 구미 OB맥주는 영남지역의 점유율이 30%대로 떨어지자 합자 투자회사인 벨기에 인터부루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구미공장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공정을 폐쇄했다. 노동자들은 희망에 따라 이천 또는 광주 공장으로 옮기거나 퇴직을 했다. OB맥주가 공장을 폐쇄하고 구미를 떠났다는 것에 구미시민들의 허탈감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때 필자는 한 사람의 평범한 방관자에 불과했다.

2003년 구미의 LG필립스LCD가 경기도 파주시로 이전했다. LCD 파주 이전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2004년 대구·경북혁신협의회에서 TF팀을 구성했고, 필자도 구성원이 되어 파주 공사 현장을 찾았다. 부지 분양가는 구미 국가4공단의 2배 정도로 높았지만 파주LCD 산업단지와 협력업체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인근의 지가가 3배 이상 치솟았다고 했다.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입장에서 단기간 내 주변 지가의 급상승은 기업 운영에 큰 자산이 된다. 한강변으로 확장 건설되고 도로, 인천공항으로 통하는 고속도로, 수도권 인근 지역이라는 지역적 여건은 내륙 도시 구미시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기업이 파주 등 수도권으로 “이전할 수 있으면서 이전하지 않는다면 바보다”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륙 도시의 여건상 대기업이 떠날 소지가 많으니 구미시가 충분히 대비하여야 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동행한 방송과 신문을 통해 그 사실을 알리는 역할만 할 수 있었다.

2019년 1월 영하의 날씨에서도 불구하고 구미시민들은 ‘구미형 일자리’ 기업으로 SK하이닉스 유치를 바라며 아이스 구미SK챌린지를 이어갔다. 필자도 웃통을 벗은 맨몸으로 얼음물을 덮어썼다. SK회장의 이름을 부르며, 구미국가5공단은 SK하이닉스가 기업 하기 좋은 공단이라고, 꼭 구미5공단으로 와 달라고 호소를 했다. 구미시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가 힘을 합하여 서명운동과 함께 구미 유치 활동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SK하이닉스는 기업 이윤을 좇아 내륙 도시 구미에 오지 않았다.

SK하이닉스 구미 유치를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LG화학 배터리 공장 유치를 제안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구미형 일자리 모델 개발을 위한 토론회에 나가 구미형일자리에 적합한 기업은 2차전지 배터리 생산공장이어야 하며, 그 대상 기업은 LG화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로 이전을 준비하는 LG화학의 계획을 전환 시킨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앞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고, 정부가 지원한다면 구미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행히도 정부와 지역정치인들의 노력으로 ‘구미형일자리’로 LG화학이 5,000억 원 규모의 배터리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지역 대학에서 배출한 우수 인재 활용이 가능한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고 토론회와 블로그를 통해 제안하였다. 구미 지역에 있는 K대학교는 교육부 항공산업교육선도대학으로 지정되어 항공공과대학을 설립하고 항공기술교육원과 경비행기 활주로를 만들어 항공기술 분야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G대학교는 항공정비 분야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있고 또 다른 K대학교는 다양한 공과계열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 유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2019년 구미시가 발표한 구미공단 미래 4대 비전에 ‘항공전자 부품 소재 특화단지’조성이 포함되었다. 주요 사업으로 ‘항공전자 부품 연구개발 및 품질인증센터 건립, 항공레저 체험교육단지 조성, 항공레저 테마파크 조성’이 들어갔다. 통합신공항 이전에 대비한 구미시의 공단 비전이지만 지역 대학교가 배출하는 항공산업 관련 우수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 유치가 가능해졌다.

대기업은 언제나 떠날 수 있다. 국내 인건비에 비해 저개발국가의 인건비는 한량없이 싸다. 세재 혜택, 분양가 인하 또는 부지 무상임대. 이런 정도의 유인책으로 수도권이나 해외로 이전하려는 기업을 잡을 수는 없다. 떠나는 기업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찾아오는 기업이 있어 희망적이다. 국가5공단 기업 유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구미시와 경상북도, 한국서부발전과 한국전력기술은 국가제5공단 하이테크밸리에 5,000MW급 천연가스발전, 100MW급의 수소연료전지발전, 주민편의시설 등 1조 2천억 원 규모의 에너지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1,000여 명 이상의 인구유입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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